▲초가을 스크령밭계절은 속임이 없이 또 가을을 맞고 있다.
강가에서 강의 식물들을 통해 계절을 느끼는 맛도 각별하다
최수경
수려한 영동의 강을 멀리서 조망했다면, 이제 강의 살에 닿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멀리 볼 땐 물 속에 한 점 같았던 바위가 가까이 와보니 40명의 엉덩이를 채우고도 남는 찹쌀떡처럼 넓은 바위였음을, 바윗돌 주변 매끄러운 돌멩이에 붙은 시커멓고 살찐 다슬기가 이렇게 많음을, 겉껍질이 오돌도돌하고 두터운 처음보는 조개가 그 희귀하다는 두드럭조개류인지를,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알 리가 없으며 손 넣어보기 전에는 느껴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 강에 깃대어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영동 가선리 어죽마을에서 올갱이국과 어죽으로 점심을 먹고, 장소를 바꿔 천내습지가 잘 보이는 저곡산성에 올라본다. 저곡산성은 금강초등학교에서 올라 10분 거리인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금강초등학교는 이미 폐교되어 달리 운영되고 있는데, 금강 400km 주변에서 유일하게 같은 이름을 갖고 있던 학교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치겠다고 영동에서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금산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이에 금산군수 권종이 600의 적은 군사로 대응하며 지략을 꾀한 곳이 저곡산성이요. 강깊이를 가늠 못하게 상류 마달피에서 황토를 풀어 시간을 끌고자 했던 곳이 바로 저곡산성 아래 닥실나루였다. 비록 몰지각한 아낙이 치맛단 걷고 여울을 건넘으로해서 왜군에게 패했고, 연이은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의 군사가 장렬히 순직하게 된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저곡산성에서 보는 천내습지는 우안의 산림생태계와 강 중앙까지 이어진 너른 갈대습지가 자연스레 연결되어 보기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멀리서 봐도 크고 작은 둠벙들이 갈대와 버드나무 숲 사이로 확연한 걸 보면, 천내강 생태계의 자궁으로 가히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은 제원다리부터 포클레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제방보축을 하고 있고, 습지초입의 버드나무 군락은 이미 벌목된 지 오래라 머리 깎인 민둥산 같고, 포클레인의 거침없는 기세가 천내습지 코 앞에서 잠시 멈춰있지만 언제라도 하얀 제방의 띠가 파고들어 올 기세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제 그렇다면 천내습지 심장부로 깊이 들어가보자. 도대체 무엇이 어떻기에 이것이 습지라고 하는 것이고, 그 습지가 어떻기에 울고 있다는 것인지. 허옇게 혀를 내민 보축제방을 밟고 가는 것보다는 마을길 골목을 지나 뒷산 낮은 언덕을 넘어 천내습지로 도달하는 코스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