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회는 항상 존재한다
.. 권위자 없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사회는 항상 존재한다 .. <트래피즈 컬렉티브/황성원 옮김-혁명을 표절하라>(이후,2009) 100쪽
"스스로를 조직(組織)하는"은 "스스로를 이루는"으로 다듬고,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나 '어느 때나'나 '어느 곳에나'로 다듬어 줍니다.
┌ 사회는 항상 존재한다
│
│→ 사회는 늘 있다
│→ 사회는 언제나 있다
│→ 사회는 어디에나 있다
└ …
ㅎ이라는 잡지에서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하기에 써서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필자원고컨펌'이라고 하면서 제가 쓴 글을 아주 뭇칼질을 해 놓았습니다(뭇칼질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엉터리로 썼으면 아주 모질게 뭇칼질을 해서 바로잡아 주어야 알맞고 올바릅니다). 제가 "예나 이제나 우리 마음밥을 살찌우는 아름다운 책임을"이라 적은 글월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다운 존재임을"로 고쳐 놓고, "김기찬 님 사진이든"을 "김기찬의 사진이든"으로 고쳐 놓으며, "당신 만화를 놓고"를 "그의 만화를 놓고"고 고쳐 놓습니다. "책이 있습니다"는 "책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로 고쳐 놓는데, 왜 이렇게 고쳐 놓았을까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책이 있으니 "책이 있습니다"라 적을 뿐인데 "책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로 길게 늘어뜨려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 아름다운 책 (o)
└ 아름다운 존재 (x)
저는 "아름다운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아름다운 책"이라고 글을 씁니다. 그런데, 제 글을 받아본 잡지사 기자한테는 "아름다운 책"이 아닌 "아름다운 존재"라고 느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멀쩡한 글을 안 멀쩡하도록 뭇칼질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라면, 이 보기글을 "권위자 없이 스스로를 이루는 사회는 어디에나 있다"나 "힘있는 사람 없이도 스스로를 이루는 사회는 언제나 있다"쯤으로 쓰겠지만, 제가 이렇게 글을 써 놓으면 틀림없이 적잖은 글쟁이나 편집자나 기자라고 하는 분들은 '있다'를 '존재하다'로 고쳐 놓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는 여러 갈래 말이 있어서 '번역'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전라도말 경상도말 제주말 같은 고장말을 넘어, 학자들 말이나 지식인 말에다가 배운 사람 말과 교과서 말과 관공서 말과 정치꾼 말이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여느 사람 말과 동떨어진 말, 어린이 말하고 동떨어진 말, 낮은자리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말이 숱하게 판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ㄴ.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 평론가 없이 사진가는 있을 수 있지만,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 <전민조 엮음-사진 이야기>(눈빛,2007) 78쪽
"없는 것이다"는 "없다"나 "없다 하겠다"로 다듬어 줍니다.
┌ 평론가 없이 사진가는 있을 수 있지만 (o)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x)
보기글 첫머리는 "있을 수 있지만"으로 잘 적었습니다. 그러나 보기글 끝머리를 "존재할 수 없는"으로 얄궂게 적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쏟았다면 좋았으련만. 한 번 더 마음을 기울였다면 나았으련만.
┌ 평론가의 존재 없이도 사진가의 존재는 있지만 (x)
└ 사진가의 존재 없이는 평론가의 존재는 없는 (x)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이 보기글을 쓴 분은 비록 글 끝에 "존재할 수 없는"으로 적었지만, 이 앞 세 군데에서는 '-의 존재' 꼴을 넣지 않았습니다. 앞 세 군데는 참으로 잘 적었습니다. 아쉽게 마지막 글월에서 어긋났을 뿐입니다.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있을 수 없다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나올 수 없다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생길 수 없다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이루어질 수 없다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나타날 수 없다
└ …
퍽 많은 사람들이 덕지덕지 누더기가 되는 얄딱구리한 글을 쓰는 모습을 돌아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얼기설기 엉성한 글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오늘날을 곱씹어 봅니다. 느끼지 못하는 삶입니다. 느끼려 하지 않는 삶입니다.
문득, 사람들이 느끼지 않기로는 말과 글뿐 아니라 이웃사람 삶도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웃사람 눈물과 웃음을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싱싱 내몰면서 두 다리와 자전거로 이 땅을 디디고 있는 여린 사람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많으나 돈있는 사람도 넘쳐, 서로서로 금이 그인 자리에서 갈갈이 쪼개어진 채 어깨동무를 못하고 있습니다. 동무요 이웃이요 식구가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예 남남인 가운데 악다구니처럼 치대거나 내치기만 할 뿐입니다.
메마른 삶이 되어 가면 메마른 말이 되어 가고, 맑고 밝은 삶이 되어 가면 맑고 밝은 말이 되어 가는데, 이 흐름을 고이 받아들이며 아끼려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착한 마음일 때 착한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착한 생각과 착한 삶과 착한 말로 뿌리내리는데, 이러한 줄기를 맞아들이며 사랑하려는 사람이 무척 적습니다.
사람들이 착한 말을 쓰고 맑은 말을 쓰며 아름다운 말을 쓸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람들이 착한 삶에서 비롯하는 착한 말을 쓰고, 맑은 삶에서 비롯하는 맑은 말을 쓰며,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운 말을 쓸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0.04 16:4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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