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주당 신임대표에 당선된 손학규 후보가 당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유세 기간에 박지원 원내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촌음을 아끼는 스케줄 탓에 인터뷰는 유세장과 유세장을 오가는 승용차 안에서 짬짬이 이뤄졌다. 지난 5월 '재수' 끝에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은 그가 당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전해준 '당심'의 변화는 '손학규를 주목하라'는 것이었다.
1년새 선거를 두 번 치르는 동안 민주당의 '당심'이 무섭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첫해(2009년)만 해도 민주당은 정동영-정세균이 '대주주'였다. 그런데 올해 두 번째 출마 때 체감한 '당심'의 밑바닥 정서는 '정동영=비호감 증가, 정세균=존재감 없음, 손학규=호감 증가'로 바뀌었다.
의원들의 정서는 대의원과 당원 그리고 민심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의원들의 정서는 민심의 밑바닥 정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정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선거에 출마한 공직후보들이다. 선거는 '인지+호감도'가 좌우한다. 당장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중앙당에 지원을 요청한 초청연사 1순위도 손학규였다.
'춘천 칩거 2년'의 효과였다. 그가 지난 2008년 4월 총선 패배후 쫓겨나듯 춘천의 산골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춘천에 얼마나 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꿈쩍 안 하고 묵묵히 '체력'을 단련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과 6·2 지방선거에서 보듯, 그는 출마 권유도 거절하고 춘천의 농가에서 닭을 치면서 당이 필요로 할 때는 나와서 당을 돕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
[손학규의 길] '도광양회'에서 '화평굴기'로 춘천 칩거의 효과박지원 원내대표가 '오프 더 레코드'로 전한 '당심'의 변화는 손학규의 대표 당선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른바 중국의 굴기(堀起) 외교에 빗대면, 철저한 도광양회(韜光養悔,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름)한 끝에 화평굴기(和平堀起, 평화적으로 우뚝 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손학규는 2007년 3월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민주당에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들어왔다. 빈손이었기에 그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당대표를 맡는 '독배'를 들었고, 총선 패배 이후에도 훌쩍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춘천 칩거 2년만에 여의도로 돌아왔고, 정계 복귀 2달만에 당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한나라당 출신으로 '시베리아'(통합민주당)에 빈손으로 들어와 2년 6개월여만에 민주당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진정성이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고도의 정치적 행위일지라도, 춘천 칩거 2년 동안 그가 보인 행보에서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진정성이 느껴진 덕분이다.
'당심'과 '민심'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조응한다. '당심'뿐 아니라 '민심'에서도 이미 변화가 감지되었다. 지난 9월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파트너스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의 생활현황 및 정치의식 패널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표본은 '패널인사이트' 패널회원 84만여명 가운데 1000명, 허용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 김효석 | 박주선 | 손학규 | 정동영 | 정세균 | 천정배 | 한명숙 | 없다 |
구태의연한 정치인 | 0.9 | 5.6 | 13.9 | 22.8 | 15.0 | 2.6 | 9.0 | 30.2 |
부유층 우선 정책에 동조 | 2.1 | 5.6 | 12.6 | 12.8 | 7.5 | 4.4 | 7.3 | 47.7 |
양극화 빈부격차 해소 노력 | 0.6 | 1.2 | 14.8 | 7.1 | 2.4 | 5.2 | 22.8 | 45.9 |
믿음직한 신뢰감 | 0.5 | 1.5 | 15.2 | 7.7 | 3.7 | 5.0 | 22.1 | 44.3 |
공인으로서 분명한 처신 | 1.2 | 1.7 | 14.3 | 6.4 | 3.4 | 6.2 | 19.1 | 47.7 |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 발전 | 1.0 | 1.0 | 17.9 | 7.9 | 3.2 | 4.1 | 12.6 | 52.3 |
국가 미래 비전과 전략 | 0.2 | 1.0 | 14.1 | 7.9 | 2.4 | 3.6 | 11.9 | 58.9 |
생활이 서민적이고 소박 | 1.0 | 1.8 | 15.1 | 5.5 | 2.6 | 4.7 | 15.2 | 54.1 |
2인자 역할 이미지 | 1.9 | 3.2 | 8.0 | 16.7 | 10.6 | 6.9 | 16.1 | 36.6 |
신선한 사고와 행동 | 1.7 | 1.8 | 9.9 | 6.7 | 3 | 7.7 | 10.5 | 58.7 |
위기관리 능력 | 0.8 | 0.9 | 18.6 | 9.3 | 5.2 | 3.8 | 21.9 | 39.5 |
전통 지배세력을 바꿀 개혁가 | 1.5 | 1.6 | 12.4 | 9.7 | 2.3 | 7.9 | 13.9 | 50.7 |
국정전반의 해박한 지식 | 1.4 | 1.3 | 17.2 | 10.2 | 4.2 | 4.9 | 11.7 | 49.1 |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 | 0.5 | 1.1 | 15.2 | 6.1 | 3.0 | 6.1 | 20.9 | 47.1 |
항상 꿍꿍이가 있어 믿기 어려움 | 0.6 | 3.4 | 11.7 | 23.8 | 10.1 | 4 | 6.4 | 40.0 |
국제적 인물로 세계적인 시각 | 0.7 | 0.8 | 10.1 | 8.3 | 1.9 | 3.4 | 6.1 | 68.7 |
자신의 감정이나 표현을 절제 | 0.9 | 2.1 | 12.8 | 6.9 | 4.8 | 5.7
| 14.7 | 52.1 |
분명한 정치적 소신과 입장 | 0.6 | 2.3 | 16.0 | 8.3 | 4.1 | 8.1 | 17.8 | 42.8 |
공격적이며 독선적인 언행 | 1.0 | 3.6 | 7.8 | 15.4 | 7.2 | 6.3 | 4.2 | 54.5 |
한반도 평화 강화 능력 | 0.1 | 0.9 | 8.5 | 9.6 | 2.8 | 2.3 | 10.7 | 65.1 |
이 패널조사에서 국민에게 투영된 정치인의 이미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정치인 7명 중에서 손학규는 ▲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발전(18%) ▲ 국정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17%) 등 4개 항목에서 비교 우위를 가진 가운데 ▲ 위기관리 능력(19%)과 ▲ 분명한 정치적 소신(16%) 등 6개 항목에서 관련 이미지를 '형성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민주당 '빅3' 가운데서 가장 안정적 기반을 구축한 가운데 확장 잠재력이 큰 정치인으로 인식된 것이다.
단순 호감도는 한명숙(44%) > 손학규(35%) > 정동영(25%) > 천정배(23%) > 정세균(18%) 순으로 나타났고, 평균 호감도 지수는 한명숙(56%) > 손학규(52%) > 천정배(48%) > 정동영(43%) > 정세균(42%) 순이었다. 한명숙을 제외하곤 두 항목 모두 가장 앞섰다.
'빈손' 손학규, '버리면 채워진다' 체득...화합과 통합이 과제
▲지난 3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주당 신임대표에 당선된 손학규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손학규 지목도와 호감도가 비교적 높게 나온 것은 새로운 인물이 민주당을 이끌 것을 기대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지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 인물'이라는 핸디캡이 있지만, 지표상으로는 정체성 시비가 상당 부분 극복되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당을 한번 맡겨보면 어떠냐"는 정서가 퍼진 결과로 해석되었다.
또 손학규의 지목도가 높은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비호남 후보'를 선호하는 트렌드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손학규는 이번 당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불임정당' 민주당의 '수권정당'화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대권 도전 의지를 간접으로 드러냈는데 그것이 주효한 셈이다. 호남 출신 후보로는 한나라당의 영남 단독 후보(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손학규를 당대표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손학규는 여전히 대선 필승카드가 아니라는 게 현재 민주당의 고민이다. 사실 현재의 민주당을 '약체'로 만든 상당한 책임은 그에게도 있다. 특히 야성을 상실한 민주당 비례대표 진용을 짠 책임이 크다. 좀더 '왼쪽'(진보)과 야성 회복을 주창하는 쇄신연대측과 화합과 통합을 이뤄가야 할 책임도 그에게 있다.
정치인 손학규는 대표적인 중도 개혁주의자다. 반면에 민주당은 이번 전대에서 '중도개혁주의'를 삭제하는 등 정강정책의 변화를 꾀했다. '중도'에서 '진보' 쪽으로 좀더 이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이번 전대에서 진보와 중도를 구분하지 않는 '국민생활 우선정치'를 내세웠다. 그가 당선 일성으로 정강의 '중도개혁주의' 삭제개정에 동의하면서도 '집권 없는 진보는 의미 없다'고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진보와 복지를 양축으로 정동영 최고위원 및 쇄신연대측과 노선 투쟁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은 손학규호를 진보와 복지 양축으로 '견인'할 태세다. 다행스런 점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진보학계의 거목'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손학규의 후원회장을 맡은 점이다.
손학규의 리더십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고, 민주당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동영의 길] 부정적 이미지 극복이 관건...진정성 보여줘야 | 매우 비호감 | 약간 비호감 | 보통 | 약간 호감 | 매우 호감 | 비호감 | 호감 | 비인지 | 평균 |
김효석 | 5.2 | 16.0 | 27.6 | 5.5 | 0.3 | 21.2 | 5.8 | 45.4 | 40.7 |
박주선 | 7.5 | 20.5 | 26.8 | 5.5 | 0.5 | 28.0 | 6.0 | 39.2 | 38.1 |
손학규 | 8.9 | 19.6 | 30.8 | 26.5 | 8.7 | 28.5 | 35.2 | 5.5 | 51.7 |
정동영 | 17.2 | 23.8 | 30.0 | 19.7 | 5.4 | 41.0 | 25.1 | 3.9 | 42.8 |
정세균 | 11.4 | 24.0 | 32.8 | 14.6 | 3.1 | 35.4 | 17.7 | 14.1 | 42.4 |
천정배 | 9.4 | 18.2 | 33.8 | 17.4 | 5.6 | 27.6 | 23.0 | 15.6 | 47.5 |
한명숙 | 12.6 | 13.1 | 26.5 | 26.2 | 17.6 | 25.7 | 43.8 | 4.0 | 56.0 |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유력한 정치인 7명이 장관으로서 국정 경험을 쌓았다. 김근태(복지부), 김두관(행자부), 유시민(복지부), 이용섭(행자부, 건교부), 정동영(통일부), 정세균(산자부), 천정배(법무부) 등이 그들이다.
정동영은 한때 참여정부의 '황태자'이자 2인자로 불렸다. 2004년 총선 때는 당의장으로 전주 지역구를 포기하고 비례대표 하위권(22번)으로 배수진을 쳐 열린우리당의 승리에 앞장섰다. 이른바 노인 폄하 발언으로 비례대표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본인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다수의 계보를 원내에 진출시킨 열린우리당의 '최대주주'였다.
그러나 이후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과 여권 대선 후보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친노세력과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2008년 총선 때는 친정동영계가 상당수 공천에서 배제된 가운데 서울 동작구에서 정몽준 후보에게 패했다. 그후 정세균 대표체제에서 2009년 4월 재보선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5년만에 원내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