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만나 역사를 낳다

[여행]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답사

등록 2010.10.11 15:34수정 2010.10.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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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성문화유산연구회가 외사산 걷기답사로 오른 곳은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출토된 아차산이다.

이 산은 용마산과 더불어 조선 한양의 동쪽 경계를 담당하고 있던 외사산이다. 해발 285m의 낮은 산으로 완만한 능선을 하고 있다.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들의 능선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그리고 봉화산까지가 옛날에는 모두 아차산이었다고 한다.


그런 흔적 중의 하나로 함경북도와 남산을 잇는 제1봉수 길에 '아차산 봉수대'가 있었는데 지금의 봉화산 근방이란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그곳을 '아차산봉수대'로 표기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봉수대터를 봉화산에 재현해 놓고는 있지만 이름은 그대로 '아차산봉수대터'로 명시해 놓았단다. 시대가 바뀌면서 행정구역도 세분화 되고 그에 따라 산들도 나누어지게 된 모양이다.

 아차산성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 오른쪽은 생태공원.
아차산성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 오른쪽은 생태공원.박금옥

아차산은 주로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과 광나루역에서 오르는데 광나루역에서는 생태공원의 숲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조금 편한 느낌이 든다. 산 입구에서 조금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약수터가 나온다. 보통은 직진해서 고구려정 쪽으로 올라가지만 아차산성을 보려면 약수터 옆의 계단으로 올라 소나무 숲길로 올라야 한다. 이 길은 생태공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솔향의 은은한 냄새가 바람결에 맡아지고 오르는 길 양 옆으로는 서양등골나물의 좁쌀 같은 흰 꽃과, 이고들빼기의 노랗고 앙증맞은 꽃이 군데군데 활짝 피어 사람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산을 오르다보면 아차산의 한자어 표기법이 두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을 뜻할 때는 아차산(峨嵯山), 고구려 유적지를 안내하는 표기에는 아차산(阿且山)이다. 광개토왕비(414년)에서 보이는 아단성(阿旦城), 삼국사기의 아차성(阿且城)을 거쳐, 고려시대 후기부터 아차산성(峨嵯山城)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설명안내판이 산 입구에 세워져 있다. 다만, 공식문화재를 알리는 유적지(산성, 보루)안내문에는 삼국사기의 아차성(阿且城)을 따르고 있다 한다.

 해맞이 광장에서 광진구 쪽으로 내려다본 홍련봉 1,2보루. 왼쪽 맨 앞에 건물들과 접해 있는 봉우리다.
해맞이 광장에서 광진구 쪽으로 내려다본 홍련봉 1,2보루. 왼쪽 맨 앞에 건물들과 접해 있는 봉우리다. 박금옥

소나무 숲의 얕은 계단과 산길을 10여분 오르면 좁은 오솔길 옆으로 철책이 둘러쳐져 있는 곳이 나온다. 아차산성이다. 유적지 보호차원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철책너머 성벽의 흔적만 보인다. 벽돌 같은 돌들이 길게 촘촘히 쌓여 있다. 성은 광진구 구의동과 광장동에 위치해 있으며(워커힐호텔 뒷산) 해발 200m 쯤에 길이 1㎞ 조금 넘는 길이의 변형된 육각형 모습이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쪽이 조금 낮게 되어 있다고 한다. 산성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의 사진을 실은 안내판이 있다.

등성을 또 10여분 오르다 내려가는 길에 도로의 4거리처럼 생긴 곳이 나온다. 낙타고개다. 낙타 등처럼 올랐다가 내려간 모습처럼 생겨서 그렇게 붙인 거란다. 그대로 직진해 해맞이 광장 쪽으로 올랐다. 한강을 등지고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구릉위의 홍련봉 보루와 뿌연 매연 속에 갇힌 건물들이 빽빽하게 보인다. 하늘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푸른 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데, 도시는 매연의 보자기에 싸여 실체를 잃어 가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용마산 정상. 뾰족이 솟아 있는 곳이다. 아차산 정상(4보루)에서 능선따라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용마산 정상. 뾰족이 솟아 있는 곳이다. 아차산 정상(4보루)에서 능선따라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박금옥

홍련봉 보루는 아차산 보루들을 총괄하는 지휘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단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고구려기와인 '연화문와당'은 궁궐, 관공서, 사찰 등에만 사용했다 한다. 그러니까 산 아래 독립된 구릉에 지휘부가 있었던 것이고, 일반 보루는 아차산 능선 곳곳에 설치해 군사들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해맞이 광장 위쪽에 있는 1보루를 지나면 곧바로 5보루의 등성이 나온다. 아차산의 1,5,3,4,6보루는 거의 같은 능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고, 2보루는 좀 더 동쪽으로 내려와 한강을 접하고 있다. 아래부터 정상까지 있는 여러 보루의 번호는 발굴된 순서대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5보루를 조금 지난 지점에 명품소나무 1호와 전망대가 있다. 부드러운 능선을 하고 있는 용마산의 정상이 깊은 계곡을 품고 올라있다.


 제 2보루가 있는 구릉. 들어갈 수 없도록 밧줄이 쳐있다. 아래는 절벽이라고 한다.
제 2보루가 있는 구릉. 들어갈 수 없도록 밧줄이 쳐있다. 아래는 절벽이라고 한다.박금옥

3보루로 오르는 중간쯤에 6보루와 2보루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보루들은 멀리씩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그만그만한 거리의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다. 6보루 표지판을 지나 동쪽으로 좀 더 걸어들어 가면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평평한 평지가 나온다. 그 한 쪽 끝에 2보루(해발276.2m)가 보인다. 유물이 출토된 곳이라 훼손을 막기 위해 밧줄로 경계를 두고 있다. 아차산에 오르면 그대로 정상(4보루)을 향하여 직진을 하게 된다. 그래서 여러 번 오른 곳이지만 중간에 샛길로 잠깐 빠지게 되어 있는 2보루는 처음이다.

뿌연 매연의 실루엣 속에서도 왼쪽 구리시 토평동일대와 오른쪽 산 밑에 있는 태왕사신기 촬영지의 건물 지붕들도 얼핏 보인다.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그 건너편에는 암사동 선사 유적지의 숲이 보이고, 밑으로 더 내려가는 어름에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다. 보루와 산성들의 위치를 가늠하다 보니 산과 강을 두고 두 나라의 밀릴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대가 느껴진다.

 제2보루에서 내려다본 구리시 토평동 일대, 건설 중인 암사대교, 한강너머 숲이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있는 곳. 한강줄기 따라 풍납토성, 몽촌토성도 있다.
제2보루에서 내려다본 구리시 토평동 일대, 건설 중인 암사대교, 한강너머 숲이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있는 곳. 한강줄기 따라 풍납토성, 몽촌토성도 있다.박금옥

오름은 여기까지고 왔던 길 되돌아 내려간다. 역사의 사람이 전설이 되어 있는 현장에 가보기 위해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열전에는 고구려 평원왕 때, 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미천한 신분의 바보온달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장군이 된 바보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일대의 땅을 찾기 위해 아차산에서 전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는다. 그러한 사건은 세월이 지나면서 전설이 되어 아차산에 온달장군의 주먹바위와 평강공주의 통곡바위를 남겼다.

 예전의 팔각정에는 신을 신고 올랐었다. 고구려정으로 새롭게 단장한 후로는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오른다.
예전의 팔각정에는 신을 신고 올랐었다. 고구려정으로 새롭게 단장한 후로는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오른다.박금옥

내려오다 보면 낙타고개 4거리쯤  바위 기슭에(광진구 쪽) 고구려정 정자가 있어 잠시 들렀다. 원래 팔각정이 있던 자리로 건물의 노후가 심해 헐고 다시 짓게 되었다. 이에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물, 유적이 산재한 터를 감안해 고구려 당시의 건축양식을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이름도 '고구려정'으로 바꾸었다. 근래의 일이라 말끔하게 색칠되어 있는 단청이 햇볕에 반짝반짝 빛났다.

 낙타고개 4거리에서 동쪽 구리시 방향으로 내리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깃든 바위를 만난다.
낙타고개 4거리에서 동쪽 구리시 방향으로 내리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깃든 바위를 만난다.박금옥

이제 낙타고개 4거리 푯말에서 동쪽 내림길로 접어들었다. 고구려정의 반대편이다. 산길 사이사이로 시야가 트이며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10여분 걸으니 온달샘과 석탑이 나온다. 석탑의 맞은 편 물길 흔적이 보이는 계곡 길을 따라 5분여를 더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바위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그리고 더 나갈 수 없는 길 끝이다. 그곳에 주먹을 불끈 쥔 모양을 한 주먹바위와 바로 앞에 평강공주를 상징하는 통곡바위가 놓여있다. 1400여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의 한 장면이 후대사람들의 상상을 덧입은 설화로 탄생 되어 있다. 슬퍼하는 평강공주를 도와 온달장군의 시신을 함께 거두었다는 거북바위도 있다. 그냥 보면 바위고 전설을 입히면 이름에 걸맞은 형상이 된다.

 온달장군의 주먹바위. 바위 모양이 꼭 주먹을 쥔 것같다. 그 앞에는 엎드려 울고 있는 형상처럼 보이는 평강공주의 통곡바위가 있다.
온달장군의 주먹바위. 바위 모양이 꼭 주먹을 쥔 것같다. 그 앞에는 엎드려 울고 있는 형상처럼 보이는 평강공주의 통곡바위가 있다.박금옥

다시 낙타고개 4거리로 나왔다. 맞은편으로 내려오면 처음 올랐던 산 입구다. 짧은 거리지만 해설을 들으며 돌다보니 3시간여가 걸렸다. 작은 산속이 온통 고구려 유적지 안내판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만남의 광장에서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며 마무리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 홍련봉 보루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 #아차산 #아차산고구려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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