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역의 지진희.
MBC
집권당을 바꿀 때마다 집권당 소속의 여인을 중전 자리에 앉힌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이, 숙종은 집권당과 중전 자리를 동일 선상에서 인식한 인물이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에 빠져 자기 일을 그르친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권력유지를 목표로 궁정의 여인들을 대했던 것이다.
'집권당과 중전은 동일 당파로'라는 원칙과 더불어 숙종이 실천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특정 당파에게 집권당과 중전 자리를 주더라도, 이들을 견제할 대항마도 동시에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원칙 하에 그는 조정의 당파들과 궁정의 여인들이 상호 격렬하게 대립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격렬하게 대결하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결국에는 양쪽 다 숙종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숙종의 계산이었다. 나아가, 승자에게 '챔피언 벨트'를 수여하는 동시에 패자에게도 '약값'을 건네어 재기를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 숙종의 권력유지 방식이었다. 숙종시대에 당쟁과 여인천하가 가장 격렬했던 것은, 조정과 궁정의 분열을 토대로 권력의 극대화를 추구한 숙종의 정치철학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숙종의 행동패턴을 파악하면,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장 희빈이 득세할 때에 그가 최 숙빈이라는 무명의 궁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장 희빈을 견제할 또 하나의 카드를 만들어 두려 했던 것이다.
그런 숙종의 패턴을 보노라면, 그가 인현왕후 복위 후에 '인현왕후·최 숙빈 대 장 희빈' 구도를 묵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밑바닥인 궁녀에서부터 당차게 올라온 데에다가 역관 가문의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요 남인당(이황의 추종세력)의 정치적 지원까지 받고 있는 장희빈을 홀로 상대하기에는 인현왕후의 역량이 너무 모자랐다.
인현왕후 역시 서인당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장 희빈만한 재정적 기반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장 희빈처럼 그렇게 당찬 여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현왕후와 장 희빈의 일대일 대결은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런데 가진 것이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웬만한 사람이 겪기 힘든 고된 삶을 경험해서 장 희빈보다 더 억셀 수밖에 없는 최 숙빈이 인현왕후 편에 가세함에 따라 궁정 여인천하의 구도는 비로소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인현왕후 복위로부터 7년 동안 여인천하 구도가 별 탈 없이 유지된 것은 이 같은 세력균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숙종은 이들의 공존을 통해 여인천하의 세력균형을 꾀했던 것이다.
이 구도를 지탱하는 진짜 원동력이 '무조건 적대'가 아니라 적대적 '공존'이라는 점은, 인현왕후와 장 희빈이 죽자마자 숙종이 최 숙빈의 중전 책봉을 원천 봉쇄하고 최 숙빈을 왕궁에서 내보낸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동안 최 숙빈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표시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믿어주던 숙종이 갑작스레 돌변한 것은, 그가 더 이상 궐 안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장 희빈을 견제할 대항마를 궐 안에 남겨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년의 최 숙빈이 장 희빈과 대결하던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 숙빈의 존재 의의는 장희빈과의 대결에 있었던 것이다. 대결을 하려면 둘 다 살아 있어야 하므로, 최 숙빈의 존재의의는 장 희빈과의 공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적대적 공존관계인 장 희빈이 사라지면 최 숙빈 역시 더 이상 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동이가 외친 상생의 정치, 최숙빈은 거기까진고아 출신의 궁녀로서 정1품의 자리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둔 최 숙빈이 여인천하의 최종 승리를 움켜쥐고도 쓸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치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적대적 공존관계인 장 희빈을 그냥 꺾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동이는 언제나 '상생'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의 최 숙빈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출발해서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의 성공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을 조선 최고의 성군 중 하나로 길러냈다는 점에서, 최 숙빈은 봉건사회 조선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여성상을 남긴 인물이다. 자식의 성공만 이룩했을 뿐 자기 자신의 인생과 관련하여서는 뾰족한 성공을 이루어내지 못한 한석봉 모친이나 신사임당 등과 비교할 때, 그는 차원이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이처럼 자신과 자식의 성공을 함께 이룩했다는 측면에서 최 숙빈은 참으로 특기할 만한 여성이다. 하지만, 장 희빈과의 적대적 공존의 룰을 지키지 않은 탓에, 그의 성공신화는 '2퍼센트 함량 미달'의 것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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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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