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장 아이들이 책은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우연찮게 보는 탄피, 그 탄피를 줍다가 죽은 아이들 등에 얽힌 아픈 한국전쟁 후유증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종찬
"내가 사격장에 다시 찾아간 것은 어른이 되고 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두식이와 명안이가 죽고 15년쯤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두 아이 무덤은 좀 작아진 것 같았으나, 눈을 뒤집어쓰고 또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찬바람이 지나간 기억을 일깨우는 듯 무덤 앞에 우두커니 선 내 두 볼을 할퀴며 불어왔습니다."
- '글쓴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몇 토막
초등학교에서 30여 년이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수락산 자락에서 농사도 짓고, 목공예도 하고, 대금도 배우며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동문학가 김종만(53)이 <사격장 아이들>(보리)을 펴냈다. 이 책은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우연찮게 보는 탄피, 그 탄피를 줍다가 죽은 아이들 등에 얽힌 아픈 한국전쟁 후유증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탄피줍기, 할로 기브 미 쪼꼬레또, 비밀 웅덩이로 가자, 달걀탄과 어깨폭탄, 눈밭 장기몰이, 돼지 잡는 날, 잠자리 비행기와 이상한 삐라, 옥수야, 쑥 버무리 묵어라, 떼뱀과 벼락, 너희들 사격장 안 가봤지?, 텅 빈 사격장 등, 지금도 홍수 때마다 떠내려 오고 있는 그 지뢰처럼 드러나는 11편이 그것.
김종만은 며칠 앞 저녁 때 인사동 한 막걸리 집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는 지워 버릴 수 없는 우리 또래 어린 시절 이야기"라며 "전국에 걸쳐 사격장을 끼고 있는 마을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불발탄을 갖고 놀다가 터져서 죽거나 다친 아이들이 참 많았다"고 되짚는다.
그는 "이제는 탄피를 주워 돈으로 바꾸어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며 분단시대 슬픈 자화상처럼 눈빛이 굳어진다. 그는 이어 "사격장은 모습만 달라졌을 뿐,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며 "가끔 총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코흘리개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같이 놀던 동무들이 많이 그립다"고 아픈 추억 한 페이지를 들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