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때 떠내려 온 지뢰보다 더 끔찍한 추억

아동문학가 김종만,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 아이들> 펴내

등록 2010.10.12 19:40수정 2010.10.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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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김종만 아동문학가 김종만(53)이 <사격장 아이들>(보리)을 펴냈다
아동문학가 김종만아동문학가 김종만(53)이 <사격장 아이들>(보리)을 펴냈다 이종찬

풀무치 쫓는 일도 이젠 그만이네.
땅꽈리 따 먹기도 이젠 그만이네.
산딸기 따 먹기도 이젠 그만이네.
총싸움도 진지놀이도 이젠 그만이네.
그 많은 새들을 쫓아 뛰던 사격장 붉은 훍이여.
이제는 안녕.
우리 모두 다시는 여기 오지 않을 거야.
두식아 명안아 사격장 종달새가 되어 날아가렴.
그래서 이 무서운 곳에 다시는 오지 마라.
안녕. 안녕.
- '사격장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모두

지난 여름 홍수 때 강화도 가까운 도서와 임진강 지류인 사미천 등지에서 180여 발에 이르는 지뢰가 발견돼 민간인 2명이 다치면서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댄 때가 있었다. 그때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북한이 일부러 지뢰를 흘려보냈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 당국이 조사를 벌인 결과 홍수에 쓸려 내려온 지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근데, 이번(10월 8일)에는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하류 북한강에서 북한제 목함지뢰 상자가 또 발견됐다. 하지만 이 지뢰도 목함지뢰 상자 안에는 폭약이 없어 지난 홍수 때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뢰들은 모두 60년이나 지난 한국전쟁이 지금까지 피멍처럼 간직하고 있는 상흔들이다.  

아동문학가 김종만이 펴낸 <사격장 아이들>을 읽다 보면 문득 총소리로 귀가 먹먹해지면서 화약 냄새가 콧속에 알싸하게 풍긴다. 그때 그 사격장에서 놀던 아이들을 떠올리면 요즘 홍수로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떠내려 온 목함지뢰 빈 상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프고 쓰리다. 미군들이 던지는 사탕이나 껌 등을 개처럼 기면서 주워도 마냥 좋았던 사격장 아이들.

아무 거리낌 없이 사격장에 들어가 탄피를 줍고, 달걀탄 불발탄을 터뜨리던 그 사격장 아이들. 그때 그 사격장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때 그 불발탄을 주워 팔아 식의주를 이어가던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격장이 가까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그 아이들처럼 살았던 김종만은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결코 지워 버릴 수 없는 어린 시절 이야기

사격장 아이들 이 책은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우연찮게 보는 탄피, 그 탄피를 줍다가 죽은 아이들 등에 얽힌 아픈 한국전쟁 후유증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사격장 아이들이 책은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우연찮게 보는 탄피, 그 탄피를 줍다가 죽은 아이들 등에 얽힌 아픈 한국전쟁 후유증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종찬
"내가 사격장에 다시 찾아간 것은 어른이 되고 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두식이와 명안이가 죽고 15년쯤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두 아이 무덤은 좀 작아진 것 같았으나, 눈을 뒤집어쓰고 또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찬바람이 지나간 기억을 일깨우는 듯 무덤 앞에 우두커니 선 내 두 볼을 할퀴며 불어왔습니다."
- '글쓴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몇 토막


초등학교에서 30여 년이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수락산 자락에서 농사도 짓고, 목공예도 하고, 대금도 배우며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동문학가 김종만(53)이 <사격장 아이들>(보리)을 펴냈다. 이 책은 전쟁이 피멍처럼 남긴 사격장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우연찮게 보는 탄피, 그 탄피를 줍다가 죽은 아이들 등에 얽힌 아픈 한국전쟁 후유증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탄피줍기, 할로 기브 미 쪼꼬레또, 비밀 웅덩이로 가자, 달걀탄과 어깨폭탄, 눈밭 장기몰이, 돼지 잡는 날, 잠자리 비행기와 이상한 삐라, 옥수야, 쑥 버무리 묵어라, 떼뱀과 벼락, 너희들 사격장 안 가봤지?, 텅 빈 사격장 등, 지금도 홍수 때마다 떠내려 오고 있는 그 지뢰처럼 드러나는 11편이 그것.


김종만은 며칠 앞 저녁 때 인사동 한 막걸리 집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는 지워 버릴 수 없는 우리 또래 어린 시절 이야기"라며 "전국에 걸쳐 사격장을 끼고 있는 마을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불발탄을 갖고 놀다가 터져서 죽거나 다친 아이들이 참 많았다"고 되짚는다.

그는 "이제는 탄피를 주워 돈으로 바꾸어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며 분단시대 슬픈 자화상처럼 눈빛이 굳어진다. 그는 이어 "사격장은 모습만 달라졌을 뿐,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며 "가끔 총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코흘리개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같이 놀던 동무들이 많이 그립다"고 아픈 추억 한 페이지를 들추었다.  
    
사격장 아이들 그는 “이제는 탄피를 주워 돈으로 바꾸어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며 분단시대 슬픈 자화상처럼 눈빛이 굳어진다
사격장 아이들그는 “이제는 탄피를 주워 돈으로 바꾸어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며 분단시대 슬픈 자화상처럼 눈빛이 굳어진다 이종찬

죽을 줄도 모르고 탄피 껍질 주우러 다니던 아이들 

"어깨포탄은 터지면서 세 조각으로 부서졌다. 종처럼 생긴 머리 부분은 그냥 무쇠여서, 주워다가 집집마다 대문에 종을 만들어 달곤 했다. 빨랫방망이 같은 가운데 몸통은 무겁기만 하고 값이 헐했다. 뒷날개에는 싯누런 주석이 붙어 있는데 이게 값이 꽤 나갔다. 두어 개만 모으면 쌀 한 말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새색시 족두리같이 생긴 뒷날개를 주우려고 눈이 벌게서 덤볐다"
- '달걀탄과 어깨포탄' 몇 토막

글쓴이도 어릴 때 저만치 사격장이 빠꼼이 바라다 보이는 동산마을(지금,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까닭에 어릴 때부터 봉림산 허리춤을 사격장으로 삼아 포탄과 총을 쏘는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자랐다. 하지만 우리 마을 아이들은 그 사격장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 사격장이 있는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 아이들이 그 사격장 주변을 지키는 주인 노릇을 했다. 그 아이들은 그때 사격장에서 튕겨져 나온 탄피를 주워 엿을 바꿔먹거나 돈으로 바꿔 필기도구와 공책 등을 사기도 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그때 아무 것도 모르고 그렇게 탄피를 줍는 그 사격장 마을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수락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란 김종만도 그 사격장이 있는 마을에 살았던 모양이다. 그도 동무들과 함께 미군들이 사격을 끝내기가 무섭게 사격장 골짜기로 달려가 탄피를 줍기에 바빴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갔을 때는 이미 마을 형들이 값 나가는 것은 다 주워간 뒤였다. 그래서 "나는 형들이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던 것이다.

하루는 동무들과 함께 달걀탄이라 부르는 불발탄을 줍는다. 이 불발탄은 산등성이 모래흙에 그대로 파묻혀 터지지 않은 포탄이었다. 그는 동무들과 함께 그 불발탄을 주워 바위에 던져 터뜨린다. 덩치가 큰 형들은 달걀탄 위에 크고 납작한 돌을 올려놓고 두 발로 쿵 하고 세게 밟아 터뜨리기도 한다. 포탄 껍데기를 줍기 위해서 참으로 위험한 짓을 참 많이도 했던 것이다.   

사격장 아이들 그는 동무들과 함께 그 불발탄을 주워 바위에 던져 터뜨린다. 덩치가 큰 형들은 달걀탄 위에 크고 납작한 돌을 올려놓고 두 발로 쿵 하고 세게 밟아 터뜨리기도 한다
사격장 아이들그는 동무들과 함께 그 불발탄을 주워 바위에 던져 터뜨린다. 덩치가 큰 형들은 달걀탄 위에 크고 납작한 돌을 올려놓고 두 발로 쿵 하고 세게 밟아 터뜨리기도 한다 이종찬

우리 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이자 지울 수 없는 생채기 

"두식이가 달, 달걀탄 안 터진 걸 두 개나 주웠어. 내가...... 그, 그, 그걸 받아서 '너들 이거 던질 때는 던지고 나서 잽싸게 엎드려 있어야 돼. 고개 들면 죽을 줄 알아!' 이렇게 말했는데...... "
- '너희들 사격장 안 가 봤지' 몇 토막

여름방학을 맞아 주인공 옥수와 동무들은 사격장에 가서 달걀탄을 주워 터뜨리는 재미와, 그 탄피를 주워 팔기 위해 사격장으로 가자는 약속을 한다. 그런 어느 날 하루는 옥수가 밥을 먹고 있는데 수락산 쪽에서 "콰꽝!"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달걀탄 터지는 소리였다. 잠시 뒤 사격장 경비 홍씨가 마을로 내려와 애들 둘이 죽었다고 말한다.

애들이 달걀탄을 터뜨리다가 벌집처럼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곧 이어 미군 구급차가 웽웽 거리며 달려오고, 총을 든 미군들이 사격장 전체에 빙 둘러서서 마을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막는다. 그날은 지난 주 전학을 온 애들(두식이와 명안이)한테 광석이가 사격장 구경을 시켜준다며 데리고 간 바로 그날이다. 

김종만은 이 책을 통해 '탄피', '달걀탄', '호드기', '삐라', '돼지 오줌보 축구' 등과 같은 낯선 말들을 이야기로 엮으면서 그 때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 삶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다. 그는 주인공 옥수를 통해 1960년대 사격장이 있던 마을 풍경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와 아픔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아동문학가 김종만 며칠 앞 종로구 인사동 한 목로주점에서 가까이 지내는 분들과 함께 만난 아동문학가 김종만(왼쪽)
아동문학가 김종만며칠 앞 종로구 인사동 한 목로주점에서 가까이 지내는 분들과 함께 만난 아동문학가 김종만(왼쪽) 이종찬

아동문학가 김종만이 펴낸 <사격장 아이들>은 한국전쟁 뒤 미군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만든 사격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옥수와 그 동무들이 겪은 가슴 시린 이야기다. 이 책이 더욱 빛나는 것은 글쓴이 스스로가 어린 시절에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사격장은 그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였지만 그 놀이터는 곧 우리 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라는 것이다.

아동문학가 김종만은 1957년 의정부 수락산자락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에서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은 틈틈이 우리 땅에서 나는 풀과 나뭇잎으로 차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는 걸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는 <잘 놀아야 철이 들지> <아이들 민속놀이 100가지> <북녘 아이들 놀이 100가지> <열두 달 우리 농사> 등이 있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화가 김홍모는 어릴 때 살았던 마을 근처에 사격장이 있어 동무들이랑 탄피를 줍고, 서리하고, 참새를 잡았기 때문에 그 기억을 잘 살려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만화책으로는 <소년탐구생활> <항쟁군> <두근두근 탐험대> 등 여러 권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사격장 아이들

김종만 지음, 김홍모 그림,
보리, 2010


#김종만 #사격장 아이들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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