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광기가 지난 19일 저녁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신종플루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아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성호
- 지난해 이맘때 신종플루로 아드님을 잃으셨을 때, 전 국민이 애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1주기가 다가오네요.
"아는 선배가 병원 원장인데 우리 아이더러 천사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신종플루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떠났다는 거죠. 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았느냐, 작년 이맘때 하루 200~300명 정도 응급실을 찾았는데 우리 애가 그렇게 된 뒤로는 2000~3000명이 찾아왔다는 거죠. 그렇지만 전... 하필 왜 그게 우리 애가 됐어야 하나, 원망도 많이 했어요."
- 의료사고 대응은 전혀 안하셨는데, 한번 해볼 만한 싸움 아닌가요?"솔직히 요즘도 문득 다시 한 번 꺼내 싸워볼까 생각은 해요. 수많은 의료인에게 경각심을 주고, 환자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갖도록 해볼까, 생각은 하지요. 그러나 들춰봤자 제 마음만 아플 것 같아요. 우리가 입원했던 병원 응급실, 중환자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벌어진 사건인데, 고통은 저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저도 우리 아이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결국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의료사고로 규정돼 합의금 받으면 또 뭘 하겠어요."
"김태원형이 준 곡은 차마 못 부르겠어요"- 지난해 세미트로트 '웃자 웃자'로 가수 데뷔도 하셨잖아요. 그 음반 잘 됐나요?"이 세상 살아가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음반으로 냈었는데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 노래를 할 순 없지만, 온라인에서나마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 '웃자 웃자' 이후 음반을 하나 더 계획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부활의 김태원형이 준 곡이 있어요. 발라드인데, 안 부르려고요. 너무 슬픈 내용이라 그 노래, 제가 끝까지 못 부를 것 같아요. 노래 제목이 '흑백영화'인데 어떤 아픔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사실 우리 부부가 석규 그렇게 된 뒤로 부활의 '생각이 나'를 많이 들었어요. 그 노래 들으면서 많이 울었죠. 그 일 있고난 뒤, 태원이형이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괜히 그런 곡을 너에게 줘서 상처 준 것 같다고. 그건 전혀 아닌데도 형은 공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래서 그냥 형더러 부르라고 했어요. 제가 할 노래는 아닌 것 같아요."
- 개그맨보다 더 웃기다는 평가를 받으시잖아요. 예능출연은 안 하시나요."왜요, 해야지요. 내년쯤엔 예능프로도 해야지요. 새로 드라마 들어갔으니 KBS가 절 가만 두겠어요? 드라마 홍보 차원에서라도 예능프로 나가야지요. 고정은 아니어도, 억지로 웃기는 건 아니어도, 생활 토크는 나가서 할 생각이에요."
-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탤런트시험 보러 갔다가 우연히 합격된 거라 들었어요. "친구놈이 방송국에 탤런트시험 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가주마 하고 따라갔다가 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KBS가 아니고, 한국방송문화예술학원이었던 거예요. 하하. 한국방송... 이러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연기학원이었던 거야. 강부자 선생님 등 KBS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연기자들이 심사위원으로 계시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하하하하.
시험에 합격했더니 돈을 내라는 거예요. 학원비죠. 당시 몇십만 원을 냈어요. 그땐 이게 아주 큰돈이었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 학원비를 달라고 했어요. 어차피 제가 상위권 학생도 아니었고, 예체능계라는 느낌이 딱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미술로 상을 많이 받아서 미술 쪽으로 갈 줄 알았고, 또 기타 치는 걸 좋아해서 음악이지 싶었는데, 사실 연기자는 생각 못했거든요."
- 연기학원은 마음에 드셨어요?"학원비 날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셰익스피어, 대학생들이 읽는 <배우수업>, <연기수업> 수십 번 읽었어요.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버스 탈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읽었어요. 제가 열심히 하니까 학원 원장이 오디션 보게 해준다는 거예요. 지금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학과장이신 최상식 감독이 절 보셨어요. 중학생을 원하는데 너는 너무 나이 들어 보여 안 되겠다! 그때 그분이 KBS 드라마 <보통사람들> 끝내고 아주 인기가 많은 감독이셨거든요.
아, 이게 끝인 모양이구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촌각에 제가 그랬죠. '감독님 저 머리 자르면 어려 보여요!', 밤톨만한 놈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럼 내일 한번 와봐 하시더군요. 머리 깎고 찾아갔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본 주셨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제가 진짜 머리 깎고 올 줄은 몰랐대요. 내가 머리 깎으면 어려 보인다고 했지, 감독님이 깎으라고 하신 적은 없으니까요. 조그마한 놈을 그냥 돌려보내면 상처 받을까봐 제게 작은 배역을 주신 거지요. 그게 KBS 일요아침드라마 <해돋는 언덕(1985)>이었어요. 윤석화, 최재성, 김민자, 추송웅 선생님... 호화캐스팅이었지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4개월 만에 종영돼요. 시청률이 저조해서. (웃음) MBC <한지붕세가족>과 경쟁했거든요.
쫑파티 하는데 왜 그렇게 서러워요? 와~ 민식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난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는데, 뭔가 좀 보여주려고 하니 막 내리네.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갔어요. 홍은동 가려면 광화문에서 73번, 8번 버스 타야 했거든요. 딴 데 가서 타도 되는데 그냥 광화문까지 간 거예요."
- 같이 탤런트시험 보러 갔던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아, 그 친구요? 하하하하. 지금 매니저 해요. 신현준씨 하다가 최근엔 최홍만."
삐끼처럼 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