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차부 차부라 부르는 정류소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시내로 나갔고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참 북적였던 곳입니다. 공중전화가 예전의 영화를 말해줍니다.
강충민
가끔 주말에 서귀포 집에 간다. 서귀포 집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찬거리 준비하고 만들어 아버지와 밥상에 같이 앉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주된 일이다(물론 음식은 내가 만든다). 정말 아주 가끔이다. 애들이 조금씩 커 갈수록 이 핑계 저 핑계가 잦다. 그것도 각시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나 하는 것인데도 서귀포 집 가는 게 무슨 거사 치르는 것같다는 생각부터 든다(자식 키워 놔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바로 내 말이다).
지난 주말 그런 죄책감이 불현듯 들어서일까, 각시하고 아들, 딸 다 같이 서귀포 집에 갔다. 일요일 아침 불쑥 전화해서 "지금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마 그때부터 설렜을 것이다. 대문 앞을 서성이다 차를 확인하곤 애써 태연한 척 집안에 들어와 계셨을 게 분명하다. 아버지표 파자마 차림이 아닌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간장 떨어졌는데, 차 타고 가서 사야 한다고?점심으로 쇠고기 미역국을 끓이는데 에구 간장이 떨어졌다. 달군 참기름에 쇠고기, 미역을 넣고 달달 볶는 것까진 좋았는데 싱크대니, 찬장을 다 뒤져도 간장이 없다.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온다. 오랜만에 온 시댁의 이방, 저방, 마당, 화장실을 종횡무진 활약하며 청소의 진수를 보여주는 각시에게 간장 사오라고 했다가는 빽 소리가 날 것은 분명할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간장을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다. 마을 중심가의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 혹은 서귀포 시내에 있는 마트 이 둘 중의 하나를 가야 한다. 걸어서 후딱 갔다 오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다. 걸어서 갔다 오다가는 쇠고기미역국 기다리다 배고픔이 극에 달할 것이다. 가뜩이나 배고픈 것 못 참는 우리 가족 아니던가.
우리 마을에도 '점빵'이 꽤 있었다. 알동네, 웃동네, 섣동네, 동동네…. 저마다 동네마다 하나씩 점빵이 있었다. 그리고 차부라 불리던 정류소 앞에는 어김없이 담뱃집을 겸한 '차부점빵'이 있었다. 샘플로 진열한 빈 담배곽이 빛이 바래 본래의 색을 알아차릴 수 없던 그런. 더군다나 우리 집에선 삼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어 이용하는데 무척 편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이제 점빵이 하나도 없다. 서귀포에 있는 대형마트에 밀려, 마을 중심가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손님을 다 뺏겨 하나 둘 문을 닫더니, 마지막까지 남았던, 우리 동네 차부점빵도 문을 닫았다. 그후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들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제 사이다 한 병 사 먹을래도 차 몰고 나가야 된다며 무척이나 아쉬워 했었다. 마을 중심가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생기던 날, 아버지는 "하나로마트는 아무 마을이나 안 생긴다"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었다. 아버진 이 결과를 전혀 예상 못했을까. 그 시절에 고등교육 받았다고 자부심 대단하신 분이 말이다.
엎어지면 코닿을, 차부점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