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1집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겉그림.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국 힙합 초창기 때 깊이있는 음악과 철학적인 랩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던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 역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편을 드는 가사를 선보였는데, 특히 2001년 부평에서 벌어진 대우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직접 다녀온 뒤 만든 '3월, 부평'이라는 곡의 가사는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진말페 1집 수록곡)
"신자유주의에 대한 재미없는 토론을 벌이는 객기에 찬 학생들 / 객기가 남긴 상처를 안고 그들은 왜 자꾸 자신을 위험으로 내던지는지 /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길래 /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길래 / 접근이 차단된 비공식적 사실들 / 9시 뉴스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른 대학생을 잡을 때 / 곤봉에 무생물처럼 무너진 다음 30초는 찾을 수 없지/ 술자리에선 9시 뉴스를 인용하며 열을 올리고 / 2차에서는 주식 이야기 / 3차에서는 여자 이야기가 이어지겠지만 / 어딘가에서는 어딘가에서는…" - 진말페, '3월, 부평' 중대한민국 힙합의 단골 주제는?이외에도 오래돼서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체제 비판적인 가사들은 한국 힙합에서 단골 주제였음이 분명하다. 이 당시 체제 비판적 가사들의 특징은 첫째,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노동-자본 간의 모순에 대한 비판 등이 주를 이뤘다는 점과 둘째, 비판 대상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특징은 한국에서 힙합음악이 시작되고 발전한 시기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한국에서 힙합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7~98년경이다. IMF 사태로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고 신자유주의적 질서로의 체제 재편이 진행되는 시기와 한국 힙합 음악이 시작되고 발전하는 시기는 정확히 일치한다. 즉, 당시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현실에 대한 냉소는 자연스럽게 랩 가사에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판 대상은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순들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쉽사리 결론지을 수 없는 어려운 주제였다. 대다수 래퍼들은 모순 그 자체를 신랄하게, 혹은 솔직하게 묘사하는 수준의 가사를 선보였다. (반면 1세대 래퍼들보다 훨씬 후대에 등장했고, 대학 시절 사회주의적 사상을 접한 타블로는 '자본주의'를 비교적 명확한 타깃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 대상의 모호성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180도로 달라진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면서, 랩 가사들의 칼날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명박 정부를 겨누기 시작했다. 마치 진보운동 진영이 정치적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대상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이명박 정부라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이 생긴 후 활성화된 것과 비슷하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봇물 터지듯 쏟아진 MB 정권 비판 랩곡들은, 반MB 정서가 약간 소강 상태에 이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 다음 편에서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각종 음반을 통해 신랄하게 MB 정권을 비판하는 랩 가사들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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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처먹는 자들이..." 이게 노래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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