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NS한마음 전 대표.
유성호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겨레>·<경향>부터 중도 성향의 <한국>, 보수 성향의 <중앙>·<문화>까지 "청와대와 검찰은 대포폰 사건을 뭉개지 말라"는 '공동 성명'을 낸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관련된 민감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언론사가 추구하는 노선과 크고 작은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입장을 내놓던 신문사들이 이처럼 의견 일치를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현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동아일보>도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김윤옥 로비 몸통' 발언을 비판한 사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기 등 불법사찰 증거 인멸에 대포폰이 이용됐다면 범죄 행위다. 검찰은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분명하게 밝혀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의 실질적인 사령탑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물이 나온 상황임에도 계속 침묵하다가 훗날 "이명박 정부 시절에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했냐"는 역사의 물음이 두려운 것이 언론사 기자들의 고민이다. 설령 힘 있는 신문·방송·통신들이 권력을 편들고 담합한다고 해도 권력이 감추고 싶은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이 과거의 교훈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무능하거나 혹은 음흉하거나문제는 진실과 소통하지 않는 청와대와 검찰이다. 대포폰 의혹을 정면 돌파하고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 정권의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청와대에서) 대포폰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나왔어도 검찰이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홍준표 최고위원), "청와대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체조사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밝히고 오해를 푸는 노력이 필요하다"(남경필 의원)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2일 "이 문제는 검찰 출입기자를 통해 취재하라"고 검찰에 책임을 돌리고, 서울중앙지검 신경식 1차장 검사는 3일 "문제의 전화기는 5대가 아니라 1대이며, KT 대리점 주인의 가족 명의를 빌린 차명 전화"라고 해명했다.
중요한 것은 전화기 개수가 아니고, 설령 검찰의 설명대로 불법으로 개설한 대포폰이 아니라 차명으로 개설한 전화라고 해도 "청와대 행정관이 건넨 휴대폰이 범죄 증거를 은폐하는 데 이용됐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는데 검찰이 더 이상 청와대를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청와대 행정관이 범죄 증거 인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도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청와대의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총리실 직원에게 '범죄 증거 인멸' 용도의 대포폰을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행정관은 전화를 받지 않고, 그의 동료들도 '회의 들어갔다', '외부에 나갔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을 한 차례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민정·정무·홍보라인의 관계자들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청와대 직원들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고 잘못을 다스려야 할 민정수석실이 손을 놓고, 들끓는 여론을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무수석실이 '나 몰라라' 하고, "청와대가 사찰의 몸통"이라는 의혹이 있다면 이를 적극 해명해 대통령의 국정 부담을 덜어줘야 할 홍보수석실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