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에서 어떻게 대학에 온단 말이오?"

[박용만과 그의 시대 29] 26세의 청년이 초등학교 2년생이 되다

등록 2010.11.05 11:39수정 2010.11.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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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박용만독립기념관
박용만 ⓒ 독립기념관

박용만은 이승만, 안창호와 함께 미주 3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이었다. 1912년 정치학 전공으로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와 하와이의 '국민보' 주필을 지냈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력투쟁론'이었으며, 네브래스카 주와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창설해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변절자라는 누명을 쓰고 1928년 동족의 손에 암살됐다. 올해는 국치(國恥) 100년으로 잉걸불과 같은 그의 삶과 투쟁을 재조명하고자 평전 <박용만과 그의 시대>를 엮는다... 기자 말

 

리용규가 덴버로 박용만을 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박용만은 자기 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를 와이머 초등학교로 데리고 갔다.

데리고 간 사람이나 따라간 사람이나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았다면 어찌 그리 용감할 수 있었을까. 리용규의 나이는 초등학교 다닐 아이의 아빠 나이가 아닌가. 그야말로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상식파괴의 모험을 벌였으니 비장한 생각마저 든다.   

 

당시 신한민보 기자였던 홍언이 그의 학업과정을 장문의 기사로 실감나게 보도했다.

 

"리용규는 하와이로부터 건너온 농민이니 이전 사적은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또한 기록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 그가 미주에 건너온 후 캘리포니아로부터 점점 굴러 걸음이 덴버에 이르니 때는 1906년인데 당년 26세요, 키가 6척 이상이요, 중량은 160여 근이니 한 건장한 농부라. 그의 친구(박용만을 가리킴)의 권함을 입어 영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현지 '와이머'라는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이때의 모양은 남들이 볼 만했다.

 

이 학교 교장은 동양을 유람한 사람이라 동양 사람을 그리 무시하지 아니 하여 초등학교 제2학년에 붙여주는지라. 독본 제1권을 끼고 교실로 들어가니 병아리들 틈에 타조가 한 마리 섞인 듯하다. 

 

키는 커서 모든 학생을 내려다보는데 모든 학생은 학년이 높아서 어른으로 자처하니 실속 없이 키만 큰 것이 도리어 귀찮은 것을 이때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므로 허리를 구부정하고 맨 끝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으니 다리가 책상과 걸상 틈에 끼어서 동작을 임의로 못하니 모든 학생이 입을 가리고 웃는다.

 

그러하니 얼굴은 화끈하고 가슴은 울렁거린다. 키가 큼으로 교사가 칠판에 써놓는 과정을 남 보다 먼저 보겠으나 글자마다 처음 보는 터이라 미처 받아 쓸 수가 없고 교사의 설명하는 말을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처음에는 등에서 땀이 흐르더니 나중에는 이마에서도 땀이 흐른다. 곁에 앉았던 학생이 민망히 여겨 자세히 일러주며 또 기록해 주니 그가 비로소 마음이 즐거운 것은 항상 부끄럽던 끝자리를 면한 것이로다.

 

이렇게 한 주일을 다니다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박용만을 찾아가 일러 가로되 '키가 남 같이 작을진대 오히려 남 같이 참아볼 수 있을 것을 육척 장신 이 몸이 애들 틈에 끼여서 땀을 흘리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니 내 돌아가 다시 호미를 잡을까 하노라.' 한 데 박용만이 간곡히 권하고 교장에게 데리고 가서 소회를 말하여 4학년에 올려주매 이로부터 일 년을 공부하였더라. (후략) "

 

일 년 후의 리용규는 일 년 전 리용규가 아니었다. 이듬해 가을, 대학에 들어갈 결심으로 덴버대학교 책임자 백텔을 찾아갔다. 첫 마디로 그는 거절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어떻게 대학을 온단 말이요? 8년을 더 공부하고 오시오."

 

하지만 이 말에 물러설 리용규가 아니었다. 백텔은 리용규를 총장 하욱에게 데리고 갔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공부하며 묻는 말도 잘 대답지 못하는 사람인데 대학에 들어오고자 하니 총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1864년 창립된 덴버대학교 옛건물
1864년 창립된 덴버대학교 옛건물미상(저작권 해제)
1864년 창립된 덴버대학교 옛건물 ⓒ 미상(저작권 해제)

 

총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저 학생은 나이 27세라 하니 사람의 지식은 말하는 데만 있지 아니하고, 아는 데 있으니 우리가 쉬운 문제로 대강 시험해 봅시다."

총장은 첫 질문을 칠판에 적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대학을 찾아왔소?" 리용규의 대답 "공부하러 왔소." 총장의 다음 질문. "여기 A와 B 두 학생이 있소. A는 B 보다 공부가 2년 앞서 있소. B가 A 보다 3배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언제 A를 따라잡아 한 학년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겠오?" 리용규는 잠시 눈을 끔벅거리더니 "2년이요" 하고 대답했다.

 

 "이 학생이 영어는 능치 못하나 영문은 알고 또 쓸 줄을 알며 산수에 능하니 대학과정을 너끈히 치러나갈 것 같소." 총장의 말이었다.

 

리용규는 덴버 대학에 입학이 됐지만 중학과정과 대학과정을 섞어서 수업을 받았다. 중학과정으로는 영어, 라틴어, 대수를 수업했고 대학과정으로는 생물학 하나만을 공부했다. 겨울방학 전에 4 과목의 시험을 치른 결과 모두 70점 이상을 받았다. 다음 학기부터 리용규는 화학, 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리용규가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에 도착한 건 1904년 3월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1년쯤 일한 후 본토로 건너와 칼리포니아의 농장에서 일하다가 덴버로 갔다. 박용만은 리용규를 미국인 교회 지하실에 살면서 청소와 정원을 돌보는 일을 하며 학교에 다니게 했다. 

  

덴버대학의 기록에 의하면 리용규는 1907년 가을학기부터 봄학기까지 다닌 것으로 돼 있다. 1908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가을학기에 등록하기 위해 박용만이 덴버를 떠나 네브래스카 주 링컨 시로 떠났는데 그때 같이 갔을지도 모른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네브래스카 주로 바뀌는 지점의 경계표시판.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네브래스카 주로 바뀌는 지점의 경계표시판. ErgoSum88(저작권 해제)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네브래스카 주로 바뀌는 지점의 경계표시판. ⓒ ErgoSum88(저작권 해제)

 

박용만이 헤이스팅스 시에서 여름방학 동안 소년병학교를 운영할 때 그는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과학교사로 봉사했다. 1916년 리용규가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나이 36세 때였다. 그러나 졸업앨범에 그의 사진은 올려 있지 않다. 

 

한인 유학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졸업앨범은 물론 모든 발간물에 사진을 내는 것을 꺼려했다. 졸업 후 리용규는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가 숭실전문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1927년 소년병학교 출신 교수 네 사람이 연희전문과 숭실전문에서 쫓겨날 때 그도 교단을 떠났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이상묵은 196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고 1969년 이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거주하고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인으로 데뷔한 후 모국의 유수한 문학지에 시들이 게재됐다. 시집으로 '링컨 生家에서'와 '백두산 들쭉밭에서' 및 기타 저서가 있고 토론토 한국일보의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 선생' 다음 카페(후손이 꾸민 명작 카페)

방선주 저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안형주 저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김현구 저 'The Writings of Henry Cu Kim'

신한국보, 국민보, 공립신보, 신한민보, 단산시보 등 1백 년 전 고신문들.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자료들.

독립운동가 열전(한국일보사) 등등.   

2010.11.05 11:3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이상묵은 196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고 1969년 이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거주하고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인으로 데뷔한 후 모국의 유수한 문학지에 시들이 게재됐다. 시집으로 '링컨 生家에서'와 '백두산 들쭉밭에서' 및 기타 저서가 있고 토론토 한국일보의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 선생' 다음 카페(후손이 꾸민 명작 카페)

방선주 저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안형주 저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김현구 저 'The Writings of Henry Cu Kim'

신한국보, 국민보, 공립신보, 신한민보, 단산시보 등 1백 년 전 고신문들.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자료들.

독립운동가 열전(한국일보사) 등등.   

#박용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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