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법은 돈 많은 놈 편?...노동자 살아갈 길 있나

<위건부두로 가는길>,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 등 책으로 본 노동세상

등록 2010.11.09 19:26수정 2010.11.0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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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XX놈아. 니가 뭐야? 노동부에서 검찰로 넘어갔어. 이젠 마음대로 해."

올해 스물네 살 전모양이 2년제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사회에 첫 직장을 들어갔는데 월급을 못 받고 나왔다. 내가 그 회사에 전화해서 왜 월급을 떼어 먹냐고 했더니 사장이란 작자가 나한테 욕을 한다.


정모양은 내가 버스 운전할 때 타고 다니던 초등학교 1학년짜리 손님이었다. 그 꼬마 친구가 벌써 14년이 지나 소녀시대 가수들보다 더 예쁘고 늘씬한 스물네 살 아가씨가 돼 다시 만나게 됐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사회에서 처음 경험한 일이 무려 다섯 달 치 600만 원이라는 월급을 못 받고 나온 일이다. 물론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서 검찰로 넘어갔다는데도 아무 소용없었다. 아는 변호사가 말했다.

"그거요? 기소돼 봤자 벌금 100만 원 나오면 끝인데요. 민사 소송이 남아 있지만, 소송 걸 때 가압류부터 들어가야 되는데, 그런 놈이 벌써 재산 다 다른 데로 빼돌려 놓고 있겠지요."

그 사장이란 작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가용도 없다. 북가좌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조사해 보니 다른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그 사람이 굴리는 회사는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안 줘도 되는 나라. 군사독재가 부자들 편만 들어주는 자본독재로 변해 노동자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자본주의 세상서 들여다 본 노동자의 삶

자본주의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노동자들의 역사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책 세 권이 나왔다. 조지오웰이 1936년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밑바닥 삶을 취재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 월간 작은책출판사에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묶어 낸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 한겨레 기자 네 명이 2009년에 노동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쓴 <4천원 인생>, 이렇게 세 권이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4천원 인생>은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왔다.


1936년 조지오웰은 탄광에서 지하 350미터로 내려가 막장을 취재한다. 조지오웰은 탄광  지하로 내려간 뒤, 광부들이 일하는 막장까지 허리를 숙이고 기어가 보고, 거기까지 가는 것조차 보통 사람에게는 하루치 일거리라고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필러(석탄을 퍼 담는 일꾼)들을 보면서 그이들의 '강인함에 쓰린 질투심'을 느낀다.

그이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석탄을 퍼 담을 뿐만 아니라, 두세 배 힘든 자세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탄광 노동자들은 갱도가 낮아 무릎으로 기거나 꿇은 자세로 일을 한다. 삽질을 할 때 다리를 못 쓰면 팔과 배 근육으로만 다 떠안아야 하는데 철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석탄 먼지가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아 숨쉬기조차 힘들고, 비좁은 공간 안에서 기관총 소리 같은 컨베이어 소음이 끝없이 들려온다. 그런 곳에서 전혀 쉬지 못하고 일곱 시간 반을 일한다. 조지오웰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고 했다.


70년이 지난 2005년.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에는 실제로 지하 305미터까지 내려가서 일하는 광부가 직접 쓴 글이 있다.(190쪽) 70년 전에 영국 탄광에서 일했던 그 노동자들과 똑같이 시커먼 몸뚱어리로, 탄가루에 범벅이 된 채로 정해진 생산량을 채운다.

1936년 그때 영국 탄광 노동자들이나 2005년 한국 탄광 노동자들이나 일한 대가는 겨우 먹고 살 정도였다. 그때 영국노동자들 임금은 115파운드 정도였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현재 우리 돈으로 얼마쯤 되는지는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조지오웰이 그이들이 사는 환경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그 돈의 가치를 짐작할 뿐이다.

"아침으로는 얇은 베이컨 두 조각과 빛깔 흐린 계란 프라이 하나, 그리고 버터 바른 빵이 나온다.", "미로 같은 슬럼가가, 나이 들고 병든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빙글빙글 기어 다니는 컴컴한 부엌……."

1936년 영국 탄광 노동자들은, 적은 임금으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노동자라면 누구나 받는 임금이 똑같았다. 그런데 70년 뒤 한국은 차별을 받는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계급이 생겼다.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에 글을 쓴 한국 탄광 불안정노동자는, 똑같이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10분의 6정도밖에 임금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노동 기간 1년이 지나면 다시 재계약을 해야 한다. 바퀴벌레처럼 살던 1936년 영국 노동자들을 부러워해야 하나?

<4천 원 인생>에서는 2010년 노동자들 실태가 나온다. 한겨레 기자 임지선 기자는 갈빗집에서 일했는데 열세 시간씩 열흘 정도 일한 뒤, 입안이 헐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근육과 관절이 아팠다. 잠깐 휴대 전화 한 번 받으려다가 사장이 "너 지금 다른 사람 일하는데 혼자 노는 거야? 일할 생각이 있는 거야 뭐야? 일 안 할 거면 그만 둬!" 하고 윽박질렀다. 임지선 기자는 마지막 근무하고 퇴근하는 순간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고 했다.

마트 노동을 했던 안수찬 기자는 사흘이 지나자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종아리에 근육이 생겼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감옥에 갇힌 것과 진배없는 정신적·육체적 압박이었다. 전종휘 기자는 침대 받침 조립을 하다가 길이 25밀리미터 핀이 엄지손가락에 박히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단순 조립 노동을 했던 임인택 기자는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난로를 내려다보면서 오직 전기가 나가 버렸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한겨레 기자들이 직접 체험한 이 수기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려주었다. <88만원 세대>를 쓴 박권일이 말한 것처럼 "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에는 걸맞지 않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보다 더 생생한 면도 있다(리얼리즘의 진수는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에 나온, 현장 노동자가 쓴 글이다).

모기떼에 지쳐 한달만에 회사를 나오다

이렇게 힘들게 일해도 월급이라도 또박또박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1975년, 내가 열 일고여덟 살 무렵, 시흥에 있던 기아자전거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내가 그때 한 달밖에 버티지 못했던 까닭은 기숙사의 모기 때문이었다. 자욱한 안개 같은 모기떼들이 시도 때도 없이 공장 전체를 덮쳤다(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모기 두 마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대목에서는 사실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는 모기떼한테 지쳐 한 달도 못 채우고 나왔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일했던 기간만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전종휘 기자가 체험한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이전 공장에서 수백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에게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라도 해 봐" 하고 말한다. 아직 현실을 모르고 있다. 이 글 처음에 말한 내 꼬마 친구 정우처럼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도 임금을 못 받는 사례가 내 주위에 수두룩하다.

최저임금법 제 28조에 '최저임금 미지급 등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이를 병과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노동청에 적발되더라도 '차액'만 지급하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최저임금이고 뭐고 아예 월급을 이렇게 주지 않는 회사도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이런 사례는 점점 늘어났다.

이런 자본독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살아날 길은 무엇일까. 조지오웰은 정의와 자유를 내세운 사회주의, <4천원 인생>에서 임지선 기자는 관심과 연대,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임지선 기자가 식당 일 체험을 한 뒤, 다른 식당에 손님으로 들어갔을 때, 일하는 식당 아줌마를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일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게 된다. 그렇게 돼야 이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콜트­콜택, 기륭전자, 동희 오토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이런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연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보다 더 약한,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월급 못 받는 정우 같은 아이들한테도 관심을 가진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빨리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생각난 김에 글을 쓰다 말고 그 사장 놈한테 전화를 또 한 번 돌렸다. "(정모양) 월급 안 주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했더니 사장이 대꾸했다.

"마음대로 해요."

'법은 돈 많은 놈 편'이라는 걸 믿고 배 째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획회의 >


덧붙이는 글 <기획회의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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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오웰, 21세기 우리

#작은책 #안건모 #글쓰기 #생활글 #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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