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캡처된 HP B209A 복합기네이버에서 검색한 HP 복합기 이 제품은 2009년 9월에 출시되어 현재 단종된 제품이다. 도매 상가에서는 유통이 되지 않는 제품이다. 무상 A/S기간이 1년임을 감안하면 자칫 무상수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안호덕
HP에서 판매된 B209A라는 복합기가 있다. HP 고객지원센터에 문의한 결과 이 제품은 2009년 9월에 출시되었고 현재는 후속 모델이 출시돼 단종됐다고 한다. 이런 제품의 경우 도매상가나 유통점에서 새 제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만약, 사더라도 팔리지 않아서 오래 방치된 제품이거나, 이상이 있어 팔지 못한 제품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대형 쇼핑몰과 오픈마켓에는 이 제품에 대한 정보가 넘쳐 난다. 위 사진은(11월 9일) 네이버 검색창을 통해 얻은 자료다. 새 제품이라고 등록한 업체만도 26군데 이르고 11번가, 인터파크 등 대부분의 대형 쇼핑몰에는 이 제품을 판다는 상점들이 입점해 있다.
최저 가격 순으로 전화를 해봤다. 물건이 있다는 대답도 있으나, 대부분이 단종된 제품인데 가격 정보를 내리지 못해 그렇다고 변명을 한다. 한 업체의 경우 전화를 끊고 다시 들어가 보니 가격 정보는 없애고 '본 상품은 판매가 종료된 상품입니다'라는 문구를 올려놓았다. 내 전화를 받고 정보를 수정한 것이다.
이런 제품의 경우 제조사에서 정한 '무상보증기간 1년'이란 시간을 초과했거나 보증 기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A/S센터는 출고일을 기준으로 무상보증기간을 정하는데, 위와 같은 제품은 구입한 날짜를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무상 A/S를 받을 수 없다.
물건의 가격을 비교해서 살 수 있는 비교 사이트의 입점 업체 관리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G마켓이나 11번가 등 대형 쇼핑몰은 그나마 결제가 해당 쇼핑몰에서 이루어지고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발행을 강제하고 있지만 '다나와' 등의 비교 사이트는 입점 업체의 입점 수수료만 받고 있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가 알아서 결제하고 거래증명서(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등)를 발급하는 형식이다. 가격이나 거래증명서 발급을 판매자가 전부 맡고 있다 보니, 불법이나 편법을 해도 제제 수단이 없는 것이다.
12일 비교 사이트 다나와에서 ASUS K42DR-VX043V라는 노트북을 검색해 봤다. 총 67개 업체의 가격이 올라와 있는데, 카드/현금동일몰 5개 업체, 제휴 쇼핑몰 11개 업체, 일반 판매몰 51개 업체인 것으로 나와 있다.
이중 일반 판매몰은 '현금몰'이라고 불리는데 카드/현금동일몰이나 제휴 쇼핑몰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당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평균 가격이 98만 9000원인데 일반 판매몰은 51개 업체 중 43개 업체가 96만 2000원을 가격으로 올려놨다. 이렇게 올려 놓은 업체에 전화를 해보면 하나 같이 대답은 일률적이다.
현금몰로 싸게 팔기 때문에 카드 결제는 물론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발행이 안 된다는 것. 카드 결제나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을 원할 경우 부가가치세 10%를 더 내라는 업체들도 있다. 즉, 싸게 사려면 세금 계산서나 현금영수증 없이 사고, 그렇지 않으면 물건값의 10%를 더 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물품 거래에 있어 부가가치세를 빼고 판매하는 행위는 분명 불법이다.
'부가가치세를 뺀 거래'에 합의하는 순간, 소비자도 범법적 거래를 동조 내지 방조하는 것이 된다. "세금계산서, 현금계산서 없이 현금으로 싸게 드릴게요"라고 해서 성사된 거래에서 소비자에게 얼마의 이익이 돌아갈지 모르지만, 이는 매출 누락이나 세금계산서 부당 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교사이트에서 현금몰이라고 불리는, 일반 판매몰 대부분의 업체에서 최저 가격을 내세워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발행을 거부하거나 해당 증서들의 발행시 물건값의 10%를 추가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비교 사이트 운영 업체나 국세청 등이 개입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심각한 문제다.
'상생'이 시기상조라면 편법·불법이라도 바로 잡아야 온라인 시장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최저 가격을 내세우기 위한 온갖 편법과 범법적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소비자들에게 '폭리 장사꾼'으로 찍혀 왕따가 되는 현실이다.
서울 도매점에서 물건을 받아 팔고 있는 지방 상인들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온라인 최저가는 소비자가 생각하는 '기준 가격'이 된다. 하지만 지방 상인들이 이런 소비자의 요구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단 컴퓨터 유통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온라인 서점의 쿠폰 적용이나 편법적 할인 정책에 도서정가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지방 도시의 서점이 문을 닫는 현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책임을 오픈마켓이나 온라인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에게만 묻는 것은 올바른 문제 해결의 방도가 될 수 없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이야 편법, 불법을 자행하는 상인들의 몫이지만 이를 조장하거나 방기하는 구조를 그냥 두고서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최저 가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계산서와 현금영수증까지 발행하지 않고 팔아야 하는 구조에선 판매자들도 일종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온라인 판매와 소비의 순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간벽지에서는 감히 찾을 수 없는 물건도 컴퓨터 앞에서는 금방 찾을 수 있고, 내일이면 집으로 받아 볼 수 있다. 가격 거품이 사그라지면서 소비자가 바가지를 쓸 경우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어쩌면 온라인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오프라인 판매가 줄어드는 현상은 시대상의 반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이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SSM 문제로 대변되는 대형 자본과 대형 마트에 의한 자영업자, 재래상권의 몰락은 비단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형 쇼핑몰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저가격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문제다.
얼마 전 포털 업체인 네이버가 오픈마켓 시장에 진출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온라인 시장의 포화 상태에 따른 과열 경쟁, 온라인 시장의 오프라인 시장 잠식 등 유통시장의 혼란을 감안하면 포털 업체의 오픈마켓 시장 진출은 지방상권, 소매 상권에게는 존립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유통법이나 상생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최소한의 상생조건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지만, 온라인 시장은 상생은 그만두고서라도 편법, 불법의 문제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조차도 변변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회에서 SSM 관련 법안 처리를 두고 논란 끝에 유통법을 먼저 통과시켰다. 25일 상생법도 처리한다는 여야의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생의 시장을 만들어 가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런 마당에 온라인 대형 쇼핑몰에서의 지방 상권·영세상인들 생존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허나, 최소한 편법·불법이 일상화되어 버린 온라인 시장에서 유통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공정 사회를 이야기하는 정부의 책무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정부가 소비자와 정직한 상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안호덕 기자는 컴퓨터·주변기기 유통업에 십수년 째 종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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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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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안 하시면 싸게 해드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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