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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향상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등록 2010.11.14 17:18수정 2010.11.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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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다"는 시각장애인의 욕구는 단순한 바람을 넘어 '타는 목마름'에 가깝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수업에 필요한 전공교재가 없어서 책 없이 수업을 듣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점자나 녹음도서와 같은 '대체자료'를 제작해야합니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소프트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 텍스트로 된 파일만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텍스트파일은 복지관이나 입력 아르바이트에 의뢰하여 제작하게 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의 열악한 정보접근 환경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한 친구와의 인연 덕분입니다. 매 학기 초마다 전공서적을 텍스트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어려움이 많고, 가끔씩 미리 공지되지 않은 책을 읽고 과제를 해야할 때마다 큰 난관에 부딪히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정안인인 저로서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할 어려움이었습니다. 시설이 잘 갖춰진 도서관과 서점에 갈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미래사회를 여는 변화의 물결'(에이지21)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 즉 사회적 기업가 17인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사회적 혁신을 일으키면서도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고 참신했습니다.

특히 미국 베네테크(Benetech) 대표 짐 프룩터맨(Jim fruchterman)의 인터뷰는 저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시각장애인용 웹 도서관인 Bookshare (www.bookshare.org)를 만들었습니다. Bookshare는 특제 스캐너를 사용해 책을 한 페이지씩 읽어내어 서버에 축적한 후 전용 음성확대 소프트웨어를 통해 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입회금와 연회비 납부 제도가 있고, 회원자격과 보안을 엄격히 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Bookshare의 사례는 막연히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 현실을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무언가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출판사, 봉사자 그리고 기술이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때 보여줄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2010년 6월 함께 일하는 재단에서 열린 저자 '와타나베 나나'씨의 강연에 갔습니다. 강연 후 저자를 찾아가 "책에 언급된 Bookshare처럼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 문제를 사회적 기업 모델로 풀어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관심있게 들어주시며 메일주소를 알려주셨습니다.


와타나베씨께 처음 메일을 쓰며 언젠가(someday)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One thing I suggest to you : do not think you will do what you want to do "one day". I suggest you start TODAY or tomorrow. Just start from a little thing you can do now."

제가 막연히 쓴 someday라는 단어가 와타나베씨의 예리한 시선을 사로잡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또는 내일부터 시작하라. 네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보라는 조언이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메일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저는 친구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 하고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결과 2010년 7월에 'Enter'라는 팀을 만들어 현재는 6명이 함께 문제점을 알아보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와타나베씨는 'Dialogue in the Dark'에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찾아보니 서울 신촌에서 '어둠속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상설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11월 13일 토요일에 팀원들과 함께 전시를 찾았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것과 같은 막막한 어둠 속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와 지팡이, 그리고 촉각에 의지한 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이동하는 장소마다 소품과 향기, 바람, 소리가 달라지면서 끊임없이 상상을 자극했습니다. 시각 대신 다른 감각이 깨어나는 곳, 아무것도 볼 수 없기에 함께하는 순간은 같아도 각자의 기억은 다른 곳, 몸을 부딪쳐도 불쾌한 감정 없이 오히려 사람의 존재만으로 안도하게 되는 곳, 그 곳이 어둠 속이었습니다.

어둠속의 대화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체험해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동안 잊고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돌이켜보는 시간이었습니다. 90분이라는 짧은 순간이나마 온전한 어둠을 느끼며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더욱 겸허하고 깊은 마음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a 어둠속의 대화 신촌에서 상설 전시중인 어둠속의 대화

어둠속의 대화 신촌에서 상설 전시중인 어둠속의 대화 ⓒ 박효진

#시각장애인 #BOOK SHARE #와타나베 나나 #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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