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사회학 고전읽기'가 지난달 10월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우성
정보사회학의 대가인 마뉴엘 카스텔의 대표작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는 <정체성의 힘>, <밀레니엄의 종언>과 함께 <정보 시대 : 정치 경제 문화> 3부작 중 하나로, 네트워크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통찰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카스텔은 이 세 권의 저작을 통해 정보 기술이 발달한 세계 속 자아와 네트워크, 사회의 관계와 변화에 대해 상세한 성찰을 보여준다.
카스텔의 '네트워크' 개념은 상호 연결된 결절의 집합을 말한다. 사람의 머리에서 손 사이에 어깨나 목, 팔꿈치 등의 결절이 있듯 사람과 사람 사이, 사회와 사람 사이에도 여러 가지의 결절들이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이런 결절들이 모여 '네트'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관계들은 관료제로 상징되는 수직적 관계와는 반대로 수평적인 모양새를 갖는다.
"카스텔은 네트워크 개념이 갖는 수평적인 성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술의 발달로 네트워크를 오가는 정보의 양이나 속도가 증가하면 이 결절이 갑자기 팽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팽창은 사회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지요. 1990년대 중반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네트워크 사회의 위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것이 좋은 예입니다.." 김 교수는 "카스텔의 '네트워크' 개념은 단순히 지식의 양과 정보 기술이 발달한 사회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증가가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는지를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컴퓨터에 기반한 새로운 네트워크가 확산됨에 따라 정보의 전달 속도가 획기적으로 단축되자 개인의 사회적 활동의 범위는 전 지구적으로 확대됐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어떤 이슈에 대해 국제적 반대 여론을 조직할 때 인터넷을 통해 전 지구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이 카스텔이 말하는 엄격한 의미의 네트워크 사회"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일본의 옴 진리교를 예로 꼽았다.
"지구적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는 어떻게든 개인적·집단적 자아에 정신적· 물질적인 충격을 주게 됩니다. 정보화를 적극 이용하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나 알카에다, 세계화를 거부하는 미국의 시민군, 전통적 가부장제와 보편적 남녀평등 사이에서 종교를 선택한 일본 옴 진리교 신도들이 생겨난 이유는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네트워크 사회는 세계 경제 전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카스텔은 1996년 작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에서 경제든 문화든 지구적 규모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가능해진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카스텔의 지적대로 오늘날 지구적 금융 네트워크는 자본주의의 신경 중추"라며 "재화에 따른 실물 경제보다도 금융거래가 경제 영역에서 갈수록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보 혁명에 힘입은 금융 네트워크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트워크가 의제의 '패자부활전' 만들어 IT 환경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카스텔의 이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김 교수는 "넓은 의미에서 정보사회로서의 네트워크 사회가 한국사회 전반을 빠른 속도로 재구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과 정보를 성장 기반으로 한 산업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국가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이나 정치 영역에서도 네트워크 사회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어떤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는 의제를 제안할 수 있는 집단이나 조직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주로 정부나 주요 기업, 사회 운동조직, 언론기관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하지요.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하지만 이들 기관들의 이해 관계에 얽혀 의제화 되지 않는 이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슈들을 최근 한국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트위터 같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이용해 의제화 시킬 수 있지요. 의제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진 셈입니다." 실제로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통해 누구나 정보를 쉽게 얻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면서 주요 사회 담론의 성격도 이전과는 달라진 양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김 교수는 "80, 90년대 학번들은 주로 자본주의 극복이나 민주주의냐 반민주주의냐 등의 거시적인 주제로 담론을 형성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보다 4대강이나 먹을거리 문제 같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주제가 보다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인터넷과 트위터 등의 SNS 서비스로 대표되는 네트워크의 도입이 우리 사회의 핵심의제들을 변화시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