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관 누구도 미디어법 유효하다고 안 해"

미디어법 부작위 소송, 인용 결정 1명 모자라 '기각'...시민단체 "위법성 인정한 판결"

등록 2010.11.25 15:04수정 2010.11.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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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유성호

[기사보강: 25일 오후 6시 23분]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로 시작된 여야 논쟁이 헌재 기각 결정으로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언론시민단체에선 여전히 헌재가 방송법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조중동 방송' 저지에 계속 나설 뜻을 밝혔다.

인용 의견 1명 모자라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기각

헌법재판소는 25일 오후 2시 야당이 제기한 '미디어법 2차 부작위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해 인용 4명, 각하 4명, 기각 1명으로 최종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야당 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9명 재판관 가운데 과반인 5명이 필요했지만 단 한 명이 모자랐다.

앞서 야당은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의 방송법, 신문법 등 언론 관련 법(미디어법) 단독 처리 과정에서 일사부재의의 원칙과 대리투표 금지 원칙 등을 어겼다며 무효 확인을 요청하는 1차 권한쟁의심판을 헌재에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그해 10월 29일 미디어법 처리 과정의 심의·표결권 침해는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법 위헌 위법성 해소 방법은 국회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애매한 결정으로 국회에 공을 넘겼다.

이에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 소속 국회의원 86명은 지난해 12월 18일 헌재 권한 침해 확인 결정에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을 상대로 부작위 권한쟁의심판을 다시 청구했다.

헌재, 미디어법 절차 위법성 재확인... 국회의장 부작위 판단 엇갈려


이번에 인용 의견을 낸 조대환, 김희옥, 송두환 재판관은 "국회의장이 심의·표결 절차의 위법성을 바로잡고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회복시켜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헌재 종전 결정의 기속력을 무시하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존속시키는 것이므로 심판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국회는 각 법률안을 다시 적법하게 심의·표결하여야 한다"면서 "법률안에 대한 종전 가결 선포 행위를 스스로 취소하거나 무효 확인할 수도 있고, 신문법과 방송법의 폐지 법률안이나 개정 법률안을 상정하여 적법하게 심의할 수도 있고, 적법한 재심의·표결의 결과에 따라 종전의 심의·표결 절차나 가결 선포 행위를 추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 해소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강국 재판관 역시 "국회의장은 헌재 결정 기속력에 따라 권한 침해 처분의 위헌 위법 상태를 제거할 작위 의무가 있고 그 구체적 방법은 국회의 자율적 처리에 맡겨져야 한다"면서 "그런데 국회의장은 법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며 인용 의견을 냈다.

반면 각하 의견을 낸 목영준, 민형기, 이공현, 이동흡 재판관은 "헌재가 권한 침해만을 확인하고 그 원인이 된 처분의 무효 확인이나 취소를 선언하지 않은 이상, 헌재 결정의 기속력만으로 국회의장에게 위헌·위법성을 제거할 적극적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김종대 재판관은 "(미디어법) 재입법을 위한 특정한 작위 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것은 헌재 결정이 갖는 기속력의 한계를 벗어난다"며 기각 의견을 밝혔다.

방통위 '화색'... '조중동 방송' 급물살?

'헌재 결정과 종편 선정은 무관하다'면서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을 강행해온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헌재에서 야당 주장이 받아들여져 국회에서 방송법을 재논의할 경우 방통위에서 추진하는 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에 차질이 예상됐다.

이 때문에 방통위 야당 추천 상임위원인 이경자 부위원장과 양문석 위원은 종편 사업자 선정 일정을 헌재 결정 이후로 미루자고 주장하며 심사 기준 보고와 심사 일정 의결을 각각 보이콧했으나 방통위는 지난 10일 여당 추천 위원 단독으로 심사일정을 의결하기도 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종편 진출을 적극 추진해온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 힘을 실어줘 이른바 '조중동 방송' 논란을 심화시킬 전망이다. 현재 조중동을 비롯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이 종편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방통위는 숫자에 상관없이 정해진 기준을 통과하면 모두 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앞서 방통위는 기각 결정을 예감이라도 한 듯 이날 오전, 오는 30일과 12월 1일 이틀간 종편·보도전문채널 승인신청서를 접수한다는 안내 보도자료를 배포해 눈길을 끌었다

이태희 방통위 대변인은 이날 오후 "헌재에서 최종적으로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만큼 앞으로 더는 논란이 없을 것"이라면서 "11월 10일 의결한 대로 종편 심사에 관한 향후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시민단체 "방송법 처리 위법성 인정... 종편 끝까지 저지"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아래 미디어행동)'이 지난 10일 오전 10시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선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아래 미디어행동)'이 지난 10일 오전 10시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선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김시연

하지만 종편 사업을 반대해온 언론시민단체에선 종편 사업 저지를 위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번 헌재 결정 역시 표면적으로 '기각'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해 1차 권한쟁의심판 때보다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박영선 언론개혁시민연대 대외협력국장은 "헌재가 여전히 국회에 공을 넘긴 판결이고 적극적인 자기 역할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인용 의견을 낸 4명뿐 아니라 각하 의견을 낸 4명 재판관 역시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과정은 위법했다는 취지였고 냉정하게 국회 재입법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국장은 "조중동 종편 컨소시엄 참여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방송법 시행령에 대한 위헌 제청,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 종편 출범을 막아내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재판관 9명 가운데 아무도 현재 미디어법이 유효하다고 하지 않았다"며 "이는 지난해 결정이 헌법 불합치 결정과 비슷하다는 내 비유를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인용 결정을 한 4명 중 3명은 헌재 결정에 따라 필요하다면 미디어 법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했고 각하 의견 역시 절차 위법성을 재확인했다"면서 "향후 법원에 비슷한 소송을 제기하면 '절차가 위법했다'는 헌재의 실체적 결정을 존중하는 판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종편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언론관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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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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