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대응? 국민의 목숨 담보로 도박 말라

[주장] 효력없는 대북정책 대신 2가지를 재정비해야 한다

등록 2010.11.28 12:43수정 2011.01.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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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건이 미국인들에게 준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더 이상 미국 영토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무력 충돌이 있는 곳에 인도적 명분으로 심심치 않게 군대를 파견하는 미국은 항상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전쟁은 항상 자국 영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9·11 이전까지 적의 공격에 의한 직접적 피해는 극소수의 해외 파병 군인들에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9·11은 그런 예외주의의 금기를 깨버렸다. 차를 타고 가다가 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난데없이 적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로 미국인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북한의 공격에 의한 연평도 민간인 피해는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휴전이 교전으로 변할 수 있으며, 포탄은 민간인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고 있다. 안정적인 휴전 상태에서는 돌발적인 교전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민간인은 안전할 수 있다는 예외주의가 깨진 것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인 것은 분명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불안과 공포를 다스리고 있는 듯하다. 

 

연평도 포격으로 드러난 '안전하지 않은' 휴전국 대한민국

 

a  북한군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25일 간단한 짐만 챙겨 뭍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25일 간단한 짐만 챙겨 뭍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북한군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25일 간단한 짐만 챙겨 뭍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사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번 공격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며 남북의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발생한, 어떻게 보면 예견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남북의 긴장이 이 수준에서 계속되면 언제든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으며 이 작은 나라에서 누구도 이번과 비슷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자신이 아는 누군가가 인명 피해를 포함한 직접적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사망한 두 명의 군인과 두 명의 민간인, 그리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연평도 주민들 모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주변 누군가가 알고 있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그리고 내전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처럼 이 나라에서 만성적인 긴장이 계속되고 간헐적인 상호 공격이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고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이미 후속 대책의 방향을 결정한 듯하다. 정부의 기조는 상대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압도해 다시는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조지워싱턴 호가 참여하는 28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훈련은 이런 무력시위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힘의 우위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은 너무나 진부하고 위험한 대책이다.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을 능가하고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남한의 긴밀한 우방이라는 천하에 드러난 사실을 비웃듯 북한은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군사력은 휴전 상태인 한반도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장치일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군사력에 기댄 대책은 또 다른 군사적 충돌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과 같은 정치적으로 독재적이고,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경직되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나라나 집단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예측 불가능한 방법을 쓸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선적이고 고립돼 있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압력을 두려워할 것도 없이 게임의 법칙을 벗어나는 충격적 방법에 기댈 가능성도 높다.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이웃 국가나 집단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이 심해질수록 높아진다. 그런 국가와 이웃해야 한다면 정교한 전략적 접근과 정교한 대응 방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가장 기본적 장치임에도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무력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생각해야 할 건 단 하나, 국민의 안위

 

 한미합동 해상훈련'불굴의 의지'가 실시되고 있는 7월 26일 오후 동해상의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에서 주위로 독도함(오른쪽)과 미군 이지스함이 기동하고 있다.

한미합동 해상훈련'불굴의 의지'가 실시되고 있는 7월 26일 오후 동해상의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에서 주위로 독도함(오른쪽)과 미군 이지스함이 기동하고 있다. ⓒ 뉴시스

한미합동 해상훈련'불굴의 의지'가 실시되고 있는 7월 26일 오후 동해상의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에서 주위로 독도함(오른쪽)과 미군 이지스함이 기동하고 있다. ⓒ 뉴시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대북 강경책을 유지해 왔고 남북 긴장 상태는 계속 상승가도를 달려왔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천안함 사건이 정점이 되서 그 후에는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접어들길 바랐다. 그러나 정점에 달한 긴장 수준이 계속 유지되면서 결국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낳고 말았다. 이는 정부의 강경책이 긴장 상태를 지속시킬 뿐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사건 수습단계인 현재 대북 강경책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국회는 강한 어조의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다.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강경책에만 매달린다면 국민들은 더 불안해질 것이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어느 한 곳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민간인에 대한 피해가 된다. 국민들 각자가 매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고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 친지, 자녀, 친구 중 누군가가 교전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끔찍하고 화나는 일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두 가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나는 단기적 대책으로 현재의 긴장 국면과 남북 대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평화를 남북의 공동 화두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 모두의 생존을 위해 평화적 공존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새로운 틀 안에서 모색하는 것이다.

 

솔직히 그 새로운 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전문가들과 사명감 있는 시민들이 넘쳐나는 이 나라에서 정부가 귀를 열고 전향적인 자세만 취한다면 새로운 생각들을 수집하고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정책결정자들과 국회의원들이 할 일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아닌 국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협상과 결단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무를 저버리고 국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담보로 북한에 대한 분노를 발산시키고, 긴급 상황에 편승해 목소리가 커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기회로 삼으며, 효력없는 대북정책을 시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연평도에 가해진 포격으로 분노와 충격에 싸인 상황에서도 많은 국민들은 전쟁을 원치 않고 있다. 그들은 무고한 민간인들은 물론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비민간인 신분으로 지내야 하는 대부분의 군인들까지 안전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2010.11.28 12:43ⓒ 2011 OhmyNews
#연평도 포격 #대북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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