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는 '인권상'을 거부하는 이들이 10일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인권표창장을 받는 이주노동자방송과 인권 논문상을 수상하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 에세이상 고등학생 부분 대상을 받는 김은총 학생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주는 인권상은 받을 수 없다며 '수상거부'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인권영상공모전에 응모해 대상에 선정된 '장애in 소리' 단체의 선철규씨도 수상거부에 함께하기로 하셨습니다.
저는 작년에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주는 국가인권위원회 논문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평택 대추리·도두리 투쟁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평화권'이 등장하는 과정을 다룬 논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논문을 내면서, 그리고 수상자로 선정돼 상을 받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거부'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이나마, 용기는 없어도 염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응당 기자회견에 함께 해야겠지만, 지금 연구차 잠시 일본에 와 있기 때문에 글로 대신하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는 '상'이라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경쟁 속에서 수상자가 결정되는 방식이 인권적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긴 하지만, 돈 되지 않는 학문과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국가 경쟁력', 'G20과 대한민국', '안보의식 강화'와 같은 주제에 대한 청소년 수필 공모, 영상 공모, 논문 공모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 병역거부자, 이주노동자 등과 같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연구를 장려하고 지원하는 '공간'은 숨 막힐 정도로 드뭅니다.
그 드문 '공간'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였습니다. 돈 안 되고, 장사 안 되는 '인권'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상 탔다고 집에 자랑하게 하고, 묶어서 책으로도 만들어주고, 또 후속 연구자들에게 의욕도 북돋아 주는 곳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인권'이라는 주제로 고민을 담아 글을 써서 보내고, 설레며 발표를 기다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 역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권위 수상논문들을 많이 참조했고, 또 나중에 좋은 논문으로 응모하려는 욕심도 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참해야 합니까.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 분명히 '수상거부'를 결정한 이들은 수많은 밤을 글과 논문, 영상을 붙잡고 끙끙 앓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수차례의 심사과정을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 기쁨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현병철이 주는 상을 받을 수 있는가? 인권을 고민하고 말하는 내가 그럴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 그 고생해서 낸 작품들로 받은 상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자신이 키운 작물들을 갈아엎을 때의 마음과 같을 것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저는 상을 받았습니다. 거부를 결정하신 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저 역시 수치스러웠습니다. 그 수치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시상식장에서 이런 소감을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수상자로 결정되고도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싸고 불거지는 여러 문제들 때문입니다. 인권연구를 하는 이들이, 안 그래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하는 이들이 여기서라도 밝게 웃고, 기뻐하고, 힘을 받을 순 없을까요?"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인권', 현병철이 추락시키고 있다"
그게 작년 12월입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그 사이 인권위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습니다. 그래도 인권위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이들조차 인권위를 떠났습니다.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전문위원들의 사퇴가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인권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이 현병철 물러나라고 이 추운 날 매일 집회하고 농성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9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하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했던 이들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을 때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려고 하자 다시 거리에서 농성했던 사람들 역시 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이라고 앉아있고, 그동안 인권위를 받쳐온 이들은 다시 거리에 있습니다.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권위원장으로 자격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온 것에 책임을 지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내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권'을 지금 현병철이란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끝도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인권을 보장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애써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오히려 인권을 모욕하고 있는 것만 같다."
수능공부보다 인권공부에 더 열을 올렸다는, 그래서 이름도 근사한 청소년 인권에세이 '대상'을 수상한 김은총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왜 김은총 학생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인권영상부문 대상을 수상한 선철규씨는 말합니다. "장애인으로서 국가에서 상을 받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고. 선철규 한 사람으로서는 이 상을 받고 싶지만, 동료 인권활동가들이 싸우고 있는데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열심히 인권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이 자랑스레 상장 하나 받을 수도 없는 수준입니까? 지역의 장애인운동을 담은 소중한 영상으로 상을 탄 장애인이 깊은 고민 속에서 수상을 거부해야만 합니까?
현병철 위원장님, 언제까지 이렇게 깔아뭉개고 그 자리에 있으실 것입니까? 사실 이쯤 되면 보수든 진보든, 인권전문가든, 문외한이든 다 떠나서 하나의 조직 책임자로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제발 부끄러움을 아십시오. 당신에게 상 받는 것이 수치스러워 수상을 거부한다는 이들에게 사과하십시오. 사과의 가장 좋은 방법은 사퇴입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상거부'를 결정한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들의 용기때문에 내년에는 인권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연구자들이, 활동가들이 밝게 웃으며 그래도 '상'하나 탔다고 자랑하고, 우리는 기쁘게 웃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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