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자책골 한나라당, 고흥길 사퇴로 꼬리자르기?

고흥길, "템플스테이 등 누락 책임 지겠다"...여론 악화에 곤혹스런 여권

등록 2010.12.12 16:50수정 2010.12.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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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졸속심사 예산파행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정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졸속심사 예산파행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정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 유성호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자책골'을 넣은 한나라당이 당직자 사퇴 등 혹독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와 필수 민생 예산 등이 누락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고 의장의 사퇴는 지난 10일 예산안 처리 직후, 한나라당이 불교계와 약속했던 템플스테이 예산의 삭감, 당 차원에서 내놓은 양육 수당 확대 등 소득 하위층 70%에 대한 지원 예산 누락 사실이 밝혀지면서 책임자 문책론이 인지 이틀 만이다.

헛발질 한나라당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고 의장은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템플스테이 예산이 일부만 반영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최후의 '게이트 키퍼'로서의 역할이 정책위의장에게 있는데 구멍이 뚫렸다"며 사퇴 배경을 밝혔다.

한나라당이 당 정책위 의장 사퇴라는 수습책을 들고 나온 것은 새해 예산안 국회 통과에만 급급해 스스로 내놓은 약속마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불교계는 여권이 템플스테이 예산을 185억 원 책정하겠다고 약속 해놓고 60억 원을 삭감하자 전국 사찰에 한나라당 의원 출입 금지령을 내리는 등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종단 차원의 4대강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불교계와 관계 정상화를 모색해 오던 여권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이 한나라당의 '헛발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대국민 여론전을 벌이는 점도 부담이었다. 야권은 한나라당이 방학 중 결식 아동 급식 지원 218억 원, 영유아 필수 예방 접종 지원 340억 원 등 필수 민생 예산을 모조리 빠뜨렸다며 예산 수정안을 제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전날 안상수 원내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원희룡 사무총장 등 당 수뇌부는 고 의장의 거취를 놓고 고심 끝에 사퇴라는 수습책을 내놨다. 고 의장은 "나의 사퇴로 예산안 파동에 대한 책임 소재 논란은 더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억울함 호소한 고흥길 "양육 수당?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고 의장의 사퇴가 예산안 강행 처리 후폭풍을 진정시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고 의장이 예산안 '날치기 처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 아니라 필수 예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한나라당 내 난맥상 때문에 사퇴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다소의 억울함도 호소하기도 했다. 약속한 양육 수당 등 민생 예산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로 인한 국방비 증액 때문이었다는 것.

그는 "연평도 사태에 따른 국방비 증액과 주민 정착을 위한 추가 예산 등으로 재정적 여유가 없어 양육 수당은 유보하는 것으로 (당 내에서) 합의를 봤던 사안"이라며 "(양육 수당 확대를 약속한) 안상수 대표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고 의장은 야당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형님실세' 예산에 대해서도 "금년 뿐 아니라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것은 관례"라며 "지역 출신 의원이 자기 지역 사업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형님·실세 예산' 등 야당의 비판에 선을 긋고 한나라당 내에서 자신의 책임 한계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에서는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러닝메이트 시스템으로 선출되는데 예산안 파동으로 정책위의장만 사퇴하는 것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일 뿐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꼬리 자르기에 냉소적인 야권

당장 고 의장의 사퇴에 대해서 민주당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은 물러갈 사람 안물러갈 사람 구분도 못하고 있다.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며 "책임질 사람이 책임 져야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전현희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고흥길 의장이 불교계 표를 잃게 하고 당 대표의 심기를 거스른 괘씸죄로 물러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한번 우롱한 것"이라며 "날치기 주범 5인방인 박희태 의장, 정의화 부의장, 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이주영 예결위 위원장과 같이 정작 책임질 사람들은 물러나지 않고 꼬리만 자른 격"이라고 꼬집었다. 

정책위의장의 사퇴라는 한나라당의 수습책에도 예산안 단독처리 후 여야 대치 국면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고흥길 #한나라당 #예산안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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