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이 포 드림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꿈을 좇는 서른셋 노처녀의 '좌충우돌' 여행기

등록 2010.12.16 08:07수정 2010.12.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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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3살. 애인도 직장도 없다. 지난해 이맘때 '마이너 기자' 8년 생활을 접고 올 한해 원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 끝에서 새로운 꿈과 조우했다. 이 기록은 그 꿈을 향한 여정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Stay with me until I reach my DREAM!" <필자 주>


12월11일(D-3)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베란다가 있어 너무 좋았던 내 집.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베란다가 있어 너무 좋았던 내 집. 이명주
이사를 마쳤다. 한 달에 걸친 느린 작업이었다. 필요한 것은 어머니와 지인의 작업장에 맡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렸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정리 방식이다.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에 와서 1년을 산 집이다. 그 시간 만큼 우리는 공생했다. 

무생물인 공간도 오랜 시간 함께 하면 산 존재와 같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별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음을 다해 하는 것이 맞다. 짐을 하나씩 빼면서, 벽에 붙인 세계지도와 가족사진을 떼면서,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면서 '그동안 고마웠다. 잘 살았다' 인사했다.

이사나 그에 버금가는 대청소는 짧게는 반년, 못해도 1년에 한번은 하는 게 좋겠다. 어지럽게 널려있거나 아예 잊고 있던 물건들을 여과시켜 제자리에 놓다 보면 삶을 사는 태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다.

서른 셋. 보다 가치있는 삶을 위한 새로운 꿈에 도전. 초등학교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를 앞두고 마음을 조리던 게 생각난다. 


12월13일(D-1)

드디어 내일이다.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 총성을 기다릴 때처럼 긴장되고 한편으로 멍하다. '어떤 모습으로 달려야지' '몇 등을 해야지' '넘어지면 어쩌나' 따위의 생각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력질주만이 최선임을 온 몸과 맘으로 체감할 뿐이다.


같이 사는 고양이 한 마리는 오전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별탈없이 끝났고 발정이 나서 포효하던 최근 여러날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고추에 묶인 실밥을 뜯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 난제다. 혈뇨를 보이던 또다른 녀석은 닷새분 약을 먹고 일단은 회복됐다. 녀석들을 한동안 못 본다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모처럼 곤한 잠을 주무시는 어머니께는 많이 송구스럽다. 타지생활하며 그토록 그리워해놓고 함께 산 일 년 동안 웃는 날보다 얼굴 붉히는 날이 많았다. 고향 내려온 직후 사이가 벌어진 아버지와도 결국 화해를 못하고 떠난다. 낯선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또다시 가장 간절해질 것을 알면서도 용기내지 못하는 내 어리석음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D-DAY 53분 지났다. 내일 이 시각이면 세부공항 근처에서 숙소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때 느낄 감정은 그때가 돼봐야 알겠다. 시간은 흘렀고 흐르고 있으며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출발선을 떠나면 오로지 열심히 달리는 것만이 최선이다. 밤의 장막이 안온하다.

 '어디가?'
'어디가?' 이명주

12월14일(D-DAY)

공항내 무료 인터넷 라운지다. 교통체증을 우려해 서둘러 집을 나섰더니 탑승까지 2시간 넘게 남았다. 어머니와는 차 안에 앉은 채로 가벼운 포옹을 했다. 가고오는 일이 빈번하다보니 작별 모습도 '쿨해졌다'.

수속과정서 위탁수화물 무게를 걱정했으나 초과된 0.5킬로그램은 눈감아줬다. 1킬로그램당 1만5천 원의 운임료가 추가되니 무시할 수 없다. 처음에 무려 22.6킬로그램이었던 짐을 15.5킬로그램으로 줄이는 데 애를 먹었다.

잠시 후 8시45분발 비행기를 타면 자정 1분을 남겨놓고 필리핀 세부공항에 도착한다. 물론 계획대로 무사히 안착했을 때의 일이다. 약 3시간30분 동안 태평양 상공에서 내 운명의 주사위가 튕겨진다. 매번 이 순간의 기분은 무척 복잡미묘하다.

세부에선 나흘간 머물 계획이다. 원래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위한 일정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혼자 가게 됐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내맘대로'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런 후에 12주 어학연수를 위해 바클로드로 옮겨 간다. 꿈을 좇는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투자다.

노트북 너머 청사 유리벽으로 밤이 내린 도시가 보인다. 이 곳은 나의 세상. 앞으로 가 닿을 곳은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같다. 탑승시각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김포공항 무료 인터넷 라운지. 2시간 후면 비행기에 탑승한다.
김포공항 무료 인터넷 라운지. 2시간 후면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명주

덧붙이는 글 | twitter ID : sindart77 새로운 꿈을 향해 가는 혼자만의 여정에 매력적인 벗들과 멘토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twitter ID : sindart77 새로운 꿈을 향해 가는 혼자만의 여정에 매력적인 벗들과 멘토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공정여행 #공정무역 #무료인터넷 #김포공항 #세부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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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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