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 가족 이야기를 재벌가를 통해 엿본다.
iMBC
퀴즈 하나. 한국 드라마를 두 가지로 나누는 기준은?
힌트. 돈은 물론 많고 무려 3세까지 가업을 대물림하며 가끔 맷값을 주고 직원들을 두들겨 패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답은 재벌. 혹은 재벌과 재벌 2, 3세, 그리고 그의 일가 친척들.
한국 드라마는 주인공이든 아니든, 최소 대재벌은 아니더라도 기업체 하나 정도는 가진 사장님은 나와 줘야 드라마가 굴러 갈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그도 아니면 병원, 대학, 호텔 등의 병원장, 사장, 이사장, 오너거나 최소한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농담이 지나치다고? 과연 그럴까?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살펴보면 그 답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문근영이 분한 '위매리'는 <매리는 외박중>(KBS)에서 음악 드라마를 기획 중인 JI기획 대표 정인(김재욱)과 계약 결혼을 강요 당한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한인 재력가의 아들이다.
<역전의 여왕>(MBC)의 황태희(김남주)는 재벌 회장의 서자인 구용식(박시후)과 티격태격 밀고 당기기 중이다. 황태희는 현재 계약직 사원에 이혼녀다. 그러고 보니 <글로리아>의 배두나 '나진진'을 사랑하는 이강석(서지석)도 재벌가 첩의 자식이다. 재벌 2세 혹은 3세들은 유난히 미모의 평민 여성들을 사랑한다.
일일, 주말드라마로 넘어오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KBS 아침드라마 <사랑하길 잘했어>의 주인공 아버지들은 모두 대기업 건설회사 사장 출신, 대기업 상무 출신으로 설정됐다. 일일극 시청률 정상을 달리고 있는 KBS <웃어라 동해야>의 도진은 호텔 부총지배인이고, 그의 어머니는 호텔 사장이다.
MBC 아침드라마 <주홍글씨>가 네 남녀의 불륜과 배신 등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SBS 아침드라마 <여자를 몰라> 역시나 이혼녀와 속옷업계 2위 기업의 사장 '서자' 아들과의 로맨스를 그린다. "성품이 착한 주인공 순정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꿈과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작품 의도를 표방한 <호박꽃 순정>(SBS) 또한 소박하고 털털한 성격의 식품기업사주의 아들이 주인공이다.
TV 드라마의 변함없는 재벌사랑그리고 오늘도 변종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계속된다. 왕자님은 물론 재벌 혹은 기업가의 2세 혹은 3세들이다.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져 신분상승하는 스토리, 물론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아이까지 갖게 한 애인이 재벌가에 '투신'하자 처절하게 복수한다는 김수현의 <청춘의 덫>의 원작이 방영된 해가 1979년이었으니, 당시로서는 꽤나 전복적인 스토리였던 셈이다.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공중파 3사의 드라마 편성 편수는 월화드라마 4편, 수목드라마 3편, 금요주말드라마 7편, 일일/아침드라마(시트콤 <몽땅 내 사랑> 제외) 6편으로 총 20편이다. 여기에 KBS의 농촌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과 청소년 드라마 <정글피쉬2>를 제외하고, 이들 중 재벌가나 기업가와 관련이 전혀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꼽는 일은 꽤나 수고스런 작업일 정도다.
그러한 예는 확연히 눈에 띄게 다른 장르인 액션블록버스터 <아테네: 전쟁의 여신>이나 사극인 <근초고왕>,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정도가 전부다. 정치드라마 <대물>에서 대권후보 강태산(차인표)을 키워준 건 장인인 산호그룹 회장이고, 방영 예정인 <프레지던트>에서 훗날 대통령으로 거듭나는 '민주화 투사' 장일준(최수종)의 정치적 야심 강한 아내 조소희(하희라)는 굴지의 재벌 회장 외동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