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공포 시기, 인문학, 그리고 민족 자존감

[서평] <인문학 콘서트 2>를 읽고

등록 2010.12.17 11:16수정 2010.12.17 11:16
0
원고료로 응원

a  <인문학 콘서트2>

<인문학 콘서트2> ⓒ 이숲

<인문학 콘서트2> ⓒ 이숲

인문학. 나와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학문.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설다. 이는, 우리 사회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 돈이나 생활의 편리함보다 더 값진 일일진대, 풍요로운 삶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인문학을 받아들여 멀리하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이게 현실이라 해도, 인문학이 사람이나 사람의 의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할 때 우리 삶은 질이 떨어지고, 우리 공동체 분위기는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연평도 사태' 이후 이곳 우리나라 반도에선 많은 이들이 전쟁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휴전 상태가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고 있다. 민족공동체가 또다시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민족의 존립을 현실정치를 맡고 있는 권력자 또는 권력계급에게만 맡겨둘 수밖에 없는가, 회의하면서 민족공동체 성원으로서 자의식을 가져보기도 한다. 이른바 '북한'의 권력 집단과 '인민'들까지도 '우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깊이 이해하여야 하는데,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한민족의 자존감을 떠올려 보았다. 그와 동시에, 능력이 출중하고 문화가 풍성한 운명공동체가 전쟁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자괴감도 적지 않게 맛보았다. 민족공동체 성원으로서 자존감과 자괴감은 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이 상반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을 어떻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어쩌면 우리에게 여전히 빈곤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인문학 콘서트2>는 자존감과 자괴감 사이를 오가는 나에게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 주었다. 이 책 첫 글에서 이어령은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이런 것을 누가 고발하고 누가 경종을 우리겠습니까? 인문학자밖에 없어요(35  쪽)"라고 단언한다. 꽤나 낯선 이야기다. 하지만 얼마나 살가운 이야긴가. 그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문학이기에 경제학자, 정치학자, 과학자가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그게 인문학이에요(51 쪽)"라고도 말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을 불러오는 무지와 야만성을 고발하고 치유하는 것도 인문학과 인문학자들 몫이다.

 

이 책에는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높이는 기운들이 가득하다. "고려는 이미 12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었다(최준식, 415쪽)."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직지심체요절>, "세계에서 가장 좋은 종이, 천년을 가는 종이로 평가받는" 한국의 종이,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기록정신,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인 한글 등에서 최준식은 한국인의 문기(文氣)를 찾는다. 우리 전통 음악과 춤만이 가지는 독특하고도 동양적인 특성, 호흡을 중시하는 것도 우리가 눈여겨 볼 수 있다고 이 책은 전한다. "우리 춤의 본질은 정형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있는 게 아닌가 해요(김삼진, 544쪽)."

 

조선후기 전의 사회구조에서는 남녀평등 사고가 지배적이었다는 김봉렬의 지적은 여전히 '남성중심'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역사적으로 남존여비의 사고는 조선후기 사회의 지배구조를 반영할 뿐이다. 그전에는 남녀평등 사고가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집의 소유권이 주부에게 귀속된 시대도 있었다(556쪽)." 그간 우리는 조선을 얼마나 폄훼하였던가. 조선의 사회구조가 사그리 문제투성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인문학자들의 애정 어린 비판들이다. 이들의 시각이 우리 모두에게 자기비판과 자기 성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자기비판이 내게서 자괴감을 더 깊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와 공동체 이웃, 그리고 민족공동체에 대하여 더 열심히 더 신중하게 탐색해 보도록 부추겼다.

 

이 책에서 여러 학자들이 우리에게 경직된 생각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사고하고 평소와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김정운, 73 쪽)"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생각도 관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신을 벗어나서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임헌우, 111쪽)." "버리는 것이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공포를 극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있게 버려야만 생각이 명쾌해진다(임헌우, 115쪽)."

 

돈의 가치를 무엇보다 높이 치는 우리 시대 풍조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구성하는 생각과 동기와 희망과 고통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182쪽)"라고 하지현은 충고한다. 임돈희는 "소유의 삶만이 진정한 목표가 아니라 비움과 나눔의 삶, 무소유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부자인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285쪽)"고 말한다.

 

인간 중심주의의 시각과 삶에 대해서 박이문은 "가치선택을 잘 해야 한다(202 쪽)"면서 "존재론적으로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모든 생명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거죠(202쪽)"라면서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에 대해서도 글쓴이들은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장윤선은 '한국의 귀신 이야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여성의 문제를 담아놓았다. "여성 원혼이 오늘날 대다수 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여전히 여성의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310쪽)."

 

그밖에 외모에 대한 집착과 한국인의 기복신앙 비판도 이 책에서 두드러진다. "외모에 대한 집착이라는 사회병리적 현상이 만연한 것 같다(조용진, 375쪽)." "영혼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내 온 삶을 바쳐 내 영혼을 아름답게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김열규, 401쪽)."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북돋음과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우리 스스로와 우리 (민족)공동체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자존감을 아무리 높여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 우리가 안고 있는 수치스러운 모습까지도 자존감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우리와 우리 공동체는 지니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분단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우리 민족공동체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와 우리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풍부한 문화와 여러 가지 역량들이 '전쟁 가능성'이라는 무시무시한 시험대에 올라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어떤 이는 전쟁을 막기 위하여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쟁은 생각보다 참혹하다. 그것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일궈놓은 모든 업적들을 무참히 짓밟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와 민족공동체의 자존감을 사그리 짓밟아버릴 것이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손실이 적은 것은 인문학 공부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자기 이해와 공동체 안 다른 성원들의 이해, 민족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뒤따르면 된다. 인문학 공부가 깊어질 때, 우리 공동체는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을 훨씬 더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절망 상황은 절대 희망 상황. 민족의 자존감 높이기. 새로운 가치지향과 인문학에서 희망 찾기. 이 책이 우리 시대에 주는 해법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인문학 콘서트2>. 박이문 외. 이숲 펴냄. 2010. 

2010.12.17 11:1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문학 콘서트2>. 박이문 외. 이숲 펴냄. 2010. 

인문학 콘서트 2 - 인문학, 한국인을 탐색하다

이어령 외 지음,
이숲, 2010


#평화 #전쟁반대 #민족 자존감 #인문학 #자기 탐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는, 말이 사물을 올바로 담아낼 때까지, 사물들을 올바로 이끌어 낼 때까지 말과 처절하게 대면하려 한다. 말과 싸워서, 세상과 싸워서, 자신과 싸워서 지지 않으려 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