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지분 빅딜? 채권단 잘못 인정한 꼴"

현대건설 채권단 중재안 논란... "소송 안 걸면 경영권 보장"

등록 2010.12.21 16:40수정 2010.12.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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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김시연

"이번 일로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다르다는 걸 사람들이 확실히 알게 됐다."

21일 아침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회장 현정은) 사옥은 한 차례 폭풍우가 쓸고 간 듯 조용했다. 이날 사옥 앞에서 만난 한 현대상선 직원은 "그동안 정몽헌 전 회장 투신, 현 회장 방북 등 워낙 많은 일들을 겪어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면서도 현대건설 인수 무산을 아쉬워했다. 

이는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에 둘러싸인 현대그룹의 위태한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현대건설 매각 다시 원점으로... '현대상선 지분' 중재안 변수

20일 저녁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해지하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면서 현대건설 매각에 숨은 불씨가 되살아났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넘겨주는 대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 '분산 매각'이란 중재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채권단 발표 직후 "사법부의 공명정대한 판단으로 현대그룹의 배타적 우선협상자의 지위가 재차 확인되기를 희망한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현대그룹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현대건설 매각이 장기화될까 우려한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지주회사격인 현대상선 경영권을 보장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채권단 가운데 하나인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20일 "현대상선 지분을 시장에 분산 매각하거나 국민연금 등에 매각하는 방법 등이 중재안이 될 수 있다"며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며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일단 현대그룹 쪽은 "검토할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고, 현대차 역시 "아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도 않았는데 시기상조"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무리수를 둬 가며 중재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이행보증금 반환과 '유찰'이란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에게 MOU 체결 당시 낸 이행보증금 2755억 원 반환 여부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줄지 여부를 앞으로 열릴 전체주주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김시연

"현대상선 지분으로 빅딜? M&A 절차 문제 인정한 셈"

전문가들은 현대그룹과 현대차가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고 매달린 배경에는 옛 모기업 되찾기와 경영권 승계라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지만, 본질은 '현대상선 지분'을 통한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에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현정은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만약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8.3%)까지 범현대가(현재 약 33%)로 넘어가게 되면 현대그룹 우호 지분(약 43%)에 육박해 현대그룹 경영권까지 넘볼 수 있다는 것이다.     

M&A 전문가인 송호연 ESOP컨설팅 대표는 "이번 M&A의 본질은 경영권 문제였기 때문에 현대그룹 입장에서 현대차가 현대상선 지분을 내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서 "현대차도 채권단 중재안을 거부해 이번 매각이 유찰되면 재입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다시 인수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송 대표는 "문제는 현대차가 현대건설에 5조1천억 원까지 부른 건 현대그룹 계열사 프리미엄까지 감안한 건데 현대상선 지분이 빠진 현대건설을 그 돈에 가져갈 의사가 있겠느냐는 것"이라면서 "결국 현대차는 현대상선 지분을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가격 결정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변호사)은 "현대그룹 입장에서 중재안을 받아들이면 경영권도 안정화되고 현대건설 인수에 따른 자금 부담도 덜 수 있지만 그거 먹고 떨어지라는 격이어서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반면 현대차는 소송 때문에 매각이 장기화되는 걸 막고 초기 인수 비용 부담도 덜 수 있어 타협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채권단이 이런 타협안을 제시한 건 불공정 게임에 휘말려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면서 "그 자체가 이번 M&A 절차가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호연 대표 역시 "채권단과 두 그룹의 이해관계를 떠나 이번 매각은 유찰시키고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게 정상적인 해법"이라고 밝혔다. 
#현대건설 #현대그룹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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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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