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TV를 보는 오붓한 저녁시간, 8시 뉴스에 나온 승진훈련장 화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뉴스 앵커는 내일(23일) 육군과 공군이 함께하는 최대의 화력 훈련이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선제 타격훈련이라고 말했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선 견인포, 자주포, 발칸포, 공대지 미사일 등의 사격 장면들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면서 10여년 전 군에서 직접 참여했던 공지합동훈련(공군 육군 합동 화력훈련의 군대식 표현)의 아픈 추억이 떠 올랐다. 자세한 내용은 군사 기밀이라 이야기할 수 없지만, 군사 기밀과 상관없이 공지합동훈련이 군 생활을 하는 사병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는 이야기하려고 한다.
공지합동 훈련은 티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23일 당일에 군인들이 모여서 포 한번 쏘고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훈련 계획이 나오고 나서 최소 훈련 3일 전부터 훈련장으로 이동해서 미리 2~3차례 예행연습까지 마치고 나서야 훈련 당일에 실탄을 동원해서 사격을 하게 된다.
단순히 사격 훈련만이 아니라 전차 기동과 기계화 보병들의 고지 점령까지 한다면 오발로 인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마치 운동회날 마스 게임하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연습을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해야 한다. 때문에 더 오랜 준비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TV에 생중계된다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1주일 전부터는 기동연습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기동과 숙영은 괴롭다
군인이 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전방에서 근무한 이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12월에는 야외 훈련을 안 한다는 것을. 11월만 되어도 철원 쪽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12월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이번 훈련에 주가되는 기갑부대들은 주간에 이동을 못한다. 도로 교통이 마비되기 때문에 밤 10시가 넘어서야 기동을 하는데, 쇠덩어리 전차, 장갑차를 타고 밤에 기동을 하게 되면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영하 30도의 날씨에 오픈카를 타고 시속 120km로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반 보병 부대도 12월에는 행군을 잘 안 한다. 오직 겨울에는 혹한기 대비 훈련 하나만 할 뿐이다. 그런데 춥디 추운 12월 밤에 승진훈련장까지 온 몸을 장갑차 밖으로 내놓고 가야 하는 그 부대원들은 얼마나 추울까!
게다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승진 훈련장에는 숙소가 없다(십여년 전이니 지금은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 정도 대규모 병력이 머무를 건물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숙박할 건물이 없어서 우리도 텐트를 치고 일주일 동안 생활을 했다. 지금 훈련에 참가하는 부대원들도 오직 텐트와 침낭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물론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야전에서 자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특별히 북한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계획된 행사를 위해서 우리의 동생들이 영하 십도를 밑도는 날씨에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니(무슨 야생버라이어티도 아니고), 이게 말이나 되나!
훈련후 정비에 성탄절 마저 사라져
내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23일 사격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복구한 뒤의 상황이다. 24일은 금요일 25일은 성탄절이자 토요일이다. 요즘은 군대도 주 5일이라 토요일에 훈련과 정비를 안 한다고 한다. 게다가 성탄절이다. 그러나! 최소 3일 최대 5일이상 야외에서 훈련을 하고 들어온 장비만 정비하는데 2-3일은 기본이다. 거기에 화력훈련을 했다면 장비 수입(청소와 상태보수)에만 2일은 더 걸린다.
내가 10여년 전에 공지합동훈련에 참여하고 총과 포를 닦는 대만 2일이 소요 되었다. 거기에 텐트와 침낭 등을 빨아서(그때는 봄이라 찬물로 빨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은 겨울인데.. 아 한숨만 나온다) 말리고 하려면 훈련참가 사병들의 성탄절은 없는 셈이다. 휴일이라고 총과 포를 안 닦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국 위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만든 이벤트 하나에 사병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사격 훈련 뉴스를 보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저런 건 왜 하는 건데?" 이게 바로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다. 105미리 포탄 한발, k2 소총탄 한발의 가격을 아직도 기억하는 나는 그 사격 장면을 보면서 돈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사격 훈련인가, 하는 궁금증에 누구하나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 부대에 전해지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별 단 장군의 별명은 ET였다. 그 이유는 승진훈련장에서 포 사격을 하던 모 부대가 포탄을 잘못 날려서 산 너머 민가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별 단 장군이 와서 손가락으로 '아 저 고지가 왼쪽으로 100미터만 더 옆에 있었으면 포탄이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고 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 2달간 전 장병이 동원돼 고지의 10미터를 깍아서 100미터 왼쪽 고지에 높이를 10미터 올렸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로 산을 옮긴다고 해서 ET가 되었다.
이게 대한민국 군의 현실이다. 이번에도 별 몇 분이 모이셔서 '한번 화끈하게 보여 줍시다'라고 결정하셔서 수천 정도되는 사병들이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안보의 강화는 이렇게 돈 날아가고, 사병들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쯤 기획하시는 분들이 알아주실지 궁금하다.
2010.12.23 09:4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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