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정연주 복귀 기사'에 313명의 독자가 111만8천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내왔다.
오마이뉴스
KBS사장을 지내고 있던 정연주씨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제해임된 것은 2008년 8월.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면서 KBS사장실을 나서야 했던 그는 그로부터 1년 후인 2009년 8월 31일 '강제해임 후 첫 칼럼'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제목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엄기영 MBC사장에게 보내는 편지>.
그러니까 자신처럼 이명박 정권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를 위한 격려였다. 그런데 그건 엄기영 사장을 위한 격려편지에 그치지 않고 초법적 행위를 반복하는 MB정권에 대한 정연주의 대반격이었다. 기자 정연주는 그렇게 정면승부를 시작했다. 이 '기자 정연주 복귀 기사'는 28만9008명이 읽었고, 감동한 313명의 독자가 111만8천 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내왔다.
이후 '정연주의 증언'은 연속안타의 기록을 이어갔다. 기사를 올릴 때마다 수만 명의 독자들이 읽었고, 예외 없이 '좋은기사원고료'가 붙었다.
<KBS의 '하나회'인 '수요회'를 아시나요> (2010.10.15),
<이런 인물이 KBS기자랍시고 기사를 썼으니>(2010.11.14) 등 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특별한 증언에 독자들은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희망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2010년에 마지막으로 쓴 기사의 제목은
<"정연주는 사악한 놈" 욕해도 무방했던 KBS김인규 체제 몇 달 만에 '부끄러운 직장' 됐다>(2010.12.24). MB정권이 유린한 민주주의가 사장 한 사람 쫓아낸 데 그치지 않고 일터의 문화까지 바꿔가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 기사에도 어김없이 좋은기사원고료가 붙었는데 독자 정훈채씨는 원고료를 내면서 "글을 읽고 있노라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적었다.
'정연주의 증언'이 독자의 가슴을 움직인 것은 그가 'KBS의 내막'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전체'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위 기사의 부제목은 "KBS와 MB정권,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였다.
"지금 KBS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리고 그동안 일어온 일들이 그동안 이명박 정권이 해온 행태와 너무 닮았다는 점이다. 내 편이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관대하게 봐주고…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가혹한 처벌과 인사상 불이익을 서슴지 않아왔던 것이다." 기자 정연주는 KBS문제를 통해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조중동이 마치 일란성 쌍둥이인 것처럼 닮았다"고 폭로했다. 그래서 연재 '정연주의 증언'은 KBS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김우룡·최시중·안상수 '막말', 대통령이 뿌린 씨앗> (2010.3.25),
<천안함 정치적 이용해 재미보겠다? 꿈 깨시라, MB...이미 몰락한 사람 있다>(2010.5.19) 등을 통해 그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MB정권과 보수세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의 기사들을 잘근잘근 씹어 음미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젊은 정연주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11년과 휴스턴대 경제학 박사(1989년)를 하면서 얻은 국제적 시야,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자유언론을 외치며 해직(1975년)당하는 과정에서 얻은 저항정신이 그가 요즘 쓰는 증언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자 정연주를 통해 살아 있는 리영희의 한 모습을 본다(그는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후 78년 동아투위활동을 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갔을 때 리영희 선생과 같은 사동에 있었다. KBS에서 강제해직당하기 전 리영희 선생으로부터 "이순신 장군처럼 명예롭게 죽어라"는 개인적인 격려편지도 받았다. -
'정연주의 증언 1' 참조)
정연주씨는 1960년말 스물 다섯 살에 기자가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독재의 검은 발톱을 드러내기 전 암흑이 짙어가던 때, 나는 그 암흑 속에서 진실을 전하고,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혀보자고 기자가 되었다" (정연주 칼럼집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비봉출판사, 2002년)고 한다. 그러나 1975년 자유언론운동을 하다가 동아일보사에서 14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쫓겨났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정연주씨는 1989년 8월 <한겨레> 워싱턴특파원으로 언론현장에 복귀했다. 그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다시 그로부터 20여 년, 60대 중반이 된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담쟁이 정연주가 우리에게 손짓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