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땔감 구하는 일, 레크리에이션이죠

[산촌일기] 전원주택지는 겨울에 골라라

등록 2010.12.31 17:34수정 2010.12.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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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입니다. 도시생활의 치열한 바쁨에 비교하면, 전원생활은 느긋한 오후 같은 생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전원생활을 동경하고 희망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생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쁘면 좀 한가한 것을 그리워하고, 너무 한가하면 좀 바쁘게 살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마치 정신노동자는 육체노동자를 부러워하고, 육체노동자는 정신노동자를 선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농촌에 살면서 도시를 그리워하다가 도시에 살아 보았고, 눈코 뜰 새 없는 도시생활을 거쳐 이제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산촌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이나 도시생활이 다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정착할 땅을 고르려고 마음먹은 지 4년, 집을 지어 산촌으로 들어 온지 3년 반이됐습니다. 이제는 산촌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지금의 12월 추위는, 30여년 만에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추울 때는 도시보다 산촌이 더 춥다고 할 것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을씨년스런 몰골의 산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 추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때 우리 부부는 서로 불을 때려고 합니다. 대개는 아내가 가서 불을 땝니다. 나무 보일러(사실은 나무와 기름 겸용 보일러입니다)에 장작불을 충분히 때놓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책을 읽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더구나 큰 유리창을 통해 안벽까지 들어오는 거실에서, 햇볕을 쬐면서 독서하는 재미는 돈 주고도 못 바꿉니다. 다행히 아내나 나는 독서를 즐기니 더욱 좋기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밀양의 진산이라는 종남산 중턱 산동네입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땔감나무는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재작년까지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죽은 나무만 골라서 땔감으로 해 왔습니다. 산에는 죽은 나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다행히 온 산을 간벌하여 주워올 나무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나무를 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산동네로 들어 온 보너스 같은 것입니다. 우리집 말고도 세 집이 주변에 더 들어 왔는데, 그분들은 심야전기를 사용합니다. 한 달에 20~30만 원정도의 난방비가 든다고 합니다. 우리는 산에서 공짜로 가져 온 나무를 때기 때문에 난방비는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겨울을 네 번째 보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난방비는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산속 동네에 살고 있는 이점입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농사일을 하였던 사람이라, 산에서 나무하는 일은 레크리에이션과 같은 활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를 하러 갈 때도 아내와 함께 갑니다. 나무를 구할 때도 즐겁게 하지만 보일러에 불을 때는 것도 서로 하려고 하니 나무 보일러에 대한 불만이 없습니다.

봄에는 새로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여름에는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만끽합니다. 채소를 키울 때도 농약은커녕 비료조차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가꾸고 보살핀 채소를 잘 씻어서 식탁에 올리는 기분은 아내만의 기쁨이겠지요.


가을에도 김장용 배추 모종을 사다가 심었는데, 너무 많아서 김장을 하고도 밭에 배추가 남아 있습니다. 요사이는 그 배추를 한 포기씩 식탁에 올립니다. 밀양의 좋은 햇볕을 받으며 잘 생육한 배추 한포기!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님들에게 대접하였더니 너무나 좋아합니다. 햇볕이 많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원주택지는 이런 겨울철에 고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귀촌 선배들이 귀촌지를 고를 때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에 살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4계절 동안 살펴 볼만한 땅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은 다른 사람이 사버리지 내가 일 년 동안 지켜볼 것이라고 기다려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 년 중에 가장 적당한 시기는 이 겨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여름에는 주변에 있는 꽃나무들이 앞 다투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배경 산에는 무성하게 잎이 피어 좋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다 지고, 꽃 한 송이 피어있지 않은 지금은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여름이 맞선 볼 때 짙은 화장을 한 처녀를 보는 것과 같다면, 겨울인 지금은 마치 밭에서 일하는 화장기 없는 처녀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귀촌지의 진면목을 보는데는 봄이나 여름, 가을보다는 겨울인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일 년 사계절에 지켜 볼 수 없다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집은 아침 8시 30분경에 햇볕이 들어옵니다. 오후에는 4시경에 햇볕이 산에 가립니다. 평야는 더 일찍 떠오르고 한참 늦게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겨울에는 음지와 양지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우리집 건너편 마을은 오전에만 햇볕이 머물고, 점심을 먹기도 전에 햇볕이 사라져 음달의 차가움 속에서 한 겨울을 지내게 됩니다. 이 겨울의 저 추운 현상을, 이 겨울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는 눈이 10cm가 내려도 햇볕만 나오면 금방 녹아 버립니다. 그러나 음달은 며칠간이나 눈이 녹지 않아서 자동차 운행이 불안하기도 합니다. 작년 3월 폭설 때 아내와 종남산에 눈 구경을 갔었습니다. 오전에 갔다가 즐거운 눈길을 걸으면서 옛 추억에 젖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산을 바라보니 벌써 다 녹아 버렸었습니다. 양지 동네의 좋은 점을 실감하였습니다.

전원 주택지를 고르려면, 이 겨울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양지 바른 동네가 좋습니다. 등성이 보다는 감싸 안은 곳이 좋지요. 동네 속보다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 좋고, 숲이 가까워 새소리가 요란한 곳이 면 더욱 좋습니다.

전기, 수도, 교통, 통신(인터넷과 전화), 그리고 자연 환경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집 앞에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들이 청청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산새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습니다. 산속 동네의 모습이지요. 산 속에서 노루를 만나는 것도 작은 기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전원주택지 #양지바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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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시민 사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2007년 봄에 밀양의 종남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귀촌하였습니다. 지금은 신앙생활, 글쓰기, 강연, 학습활동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 있는 1948년생입니다. www.happ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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