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군에 갈 때는 남북통일이 될 거다"

빗나간 할아버지의 말씀... 그러나 "겨울이 깊으면 봄도 머지않으리"

등록 2011.01.05 19:15수정 2011.01.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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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대받아 행사장에 가면서 깜작 놀랐다. 행사장 일대는 심학산 아래 파주출판단지로 지난날 내가 엄청 고생하면서 군복무를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옛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일대가 상전벽해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1969년 가을, 우리 부대가 갑자기 전방부대로 이동을 했다. 이른 새벽 완전군장을 꾸려 가을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30여 킬로미터를 강행군했다. 저물녘에 도착한 곳이 바로 북한이 빤히 보이고, 대남방송이 간간이 들리던 심학산 아래 산남부대였다. 그때는 철조망도 지금처럼 요란치 않았고, 부대 막사도 초가지붕 막사와 24인용 텐트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곳은 한강하류로 곧 한강이 임진강과 합류되는 지점이었다. 그곳은 당시 북한 쪽에서 만조 때는 고무보트로 30분이면 DMZ를 넘어 아군 초소에 닿는다고, 우리 측에서 경계근무를 매우 철저하게 강화했던 지역이었다. 당시 우리 대대는 한강 둑에다가 뚜껑이 없는 호(무개 호)를 만들어 해가 지고부터 이튿날 해가 뜰 때까지 12시간 이상, 밤새 잠복근무를 하기도 했다.

 1969년 겨울 심학산 아래 부대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새로 지급한 방한복을 입고 좋아했던 소대원들. 앞줄 오른쪽이 필자, 이름이 기억나는 소대원은 김길용(부산), 김홍기(충북대), 최상신(서울), 임영규(안동와룡), 김학수(서울), 조만규(경남) 등이다. 이 가운데 기혼자가 셋이었다.
1969년 겨울 심학산 아래 부대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새로 지급한 방한복을 입고 좋아했던 소대원들. 앞줄 오른쪽이 필자, 이름이 기억나는 소대원은 김길용(부산), 김홍기(충북대), 최상신(서울), 임영규(안동와룡), 김학수(서울), 조만규(경남) 등이다. 이 가운데 기혼자가 셋이었다.박도

영하 10~20도 강추위에 울고 있던 근무자들

그 당시 나는 소대장으로 부대원(중대원)들의 잠복근무를 순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순찰 근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둑으로 오르내리며 부대원들의 경계근무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강바람이 어찌나 차가운지 순찰을 한 번 돌고나면 온몸이 동태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대원들의 고역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나의 고생은 그들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특히 소한에서부터 대한, 입춘까지는 밤마다 강물이 조수에 따라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여 얼음 깨어지는 소리가 '우두둑' 밤새 울렸다. 근무자들은 영하 10~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강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그들은 뚜껑도 없는 무개 호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순찰 중 근무자의 얼굴을 전짓불로 비춰보면 그들은 너무 추워 울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상급부대에서는 잠복호에 덮개가 있으면 근무자가 잠을 자 경계가 소홀하다고 뚜껑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부대는 겨울을 그렇게 난 뒤 그 이듬해 가을까지 꼬박 12개월 동안 심학산 바로 밑 부대에 근무하면서 그 지역 경계 임무를 맡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심학산 정상에 오르면 북한이 빤히 보였다. 포대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면 거기서도 모내기철에는 사람들이 논에서 모를 내고, 가을이면 추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같은 배달겨레끼리 이게 뭔 짓거리인가 하고. 그때 남북 군인들은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비방방송을 하고, 날마다 삐라를 날려 보냈다. 우리 부대가 주간에 하는 일은 그 삐라들을 수거하는 일이었다.


그때 우리 부대원들은 어찌나 고생이 심했든지 그들은 밤새 근무지에서 돌아오면 이를 갈았다.

"장가가서 아들 낳으면 그 자리에서 팍 엎어버릴 겁니다."

어떤 부대원은 경계근무를 견디지 못해 자해로 불명예제대를 한 친구도 있었다. 어느 가을에는 비가 몹시 내리는데 한밤중에 비상이 걸렸다. 강물 위에 이상한 물체가 꿈틀거리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남짓 사격 끝에 강가에 널브러진 물체를 확인하니까 송아지였다. 아마도 홍수로 임진강에서 떠내려 오던 송아지가 바다의 조수를 만나 한강 상류로 역류하다가 총알 세례를 된통 맞은 거였다.

더욱 견고해진 DMZ 철조망... 서로 총구 겨눈 자손들이 가엾기만 하다

 심학산 아래 부대에 근무할 때 필자. 뒷산이 심학산이고, 초가가 우리 부대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행정실이었다.
심학산 아래 부대에 근무할 때 필자. 뒷산이 심학산이고, 초가가 우리 부대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행정실이었다. 박도
헤어보니 그곳을 꼭 40년 만에 가 본 셈이다.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했다.

일산 들판은 그새 신시가지로 옛 흔적을 가늠키 어려웠다. 한강 둑에는 이중삼중으로 견고한 새 철조망이 쳐지고, 자유로가 남북으로 이어져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지난날 초가막사는 그새 아담한 벽돌막사로 바뀌고, 강 언덕에 곰보자국처럼 많았던 무개 호는 자취도 없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군에 갈 때는 남북통일이 될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때의 할아버지보다 어느 새 내가 나이를 더 먹었다. 할아버지 말씀은 한참 빗나갔다. 지금은 내가 근무했던 그때보다 DMZ 철조망이 더욱 견고해졌다.

이즈음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동안 사라진 남북의 삐라와 상호 비방방송이 재현될 듯하고, 송아지 한 마리 남북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다시 오는 듯하여 한 배달겨레로, 이 시대의 한 글쟁이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겨울 휴전선 155마일 경계로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는 단군의 자손들이 마냥 가엾기만 하다.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그 언제 오실까. 소대한 추위에 나는 지난날 그곳에서 고생한 옛 전우들이 그리워 그때 추억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아! 한반도에 휴전선 철조망을 걷을 진정한 봄은 그 언제 오려나. 강추위에 전방에서 고생하는 후배 장병들에게 셀리의 시 한 구절을 보낸다. 나도 내 할아버지처럼 이 시대에 빗나간 말이 아닐지 모르겠다.

"겨울이 깊으면 봄도 머지않으리."
#휴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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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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