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권우성
실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료계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집권경험이 있는 야당이 무상의료를 의제화 한 것이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이다. 그러나 '다만'이 붙는다. 재원조달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 등은 재정여건을 무시한 인기몰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무상시리즈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조 단위의 돈이 필요하다. 무상의료에 8.1조 원, 무상보육에 4.1조 원, 무상급식에 1조 원, 반값 등록금에 3.2조 원 등 약 16.4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민주당의 계산이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민주당 내에서도 확정되지 않았다. 부자감세 등을 철회해 20조 원을 마련하겠다는 큰 그림만 그려진 상태다. 당초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구체적인 재원확보방안도 당론으로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당 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다음 의원총회로 결정을 미뤘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종합부동산세를 부활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이념적으로 너무 좌클릭한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증세문제는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전병헌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무상복지 당론 채택에 대해 발표하며 "당론에서 추가적인 세목 신설이나 세율인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손학규 대표는 전날 "복지국가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우선 재정운영을 짜임새 있게 해 복지국가를 실현, 세금을 낼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면서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점진적인 증세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적극적인 증세론자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정책위에서 낸 방안을 보면 20조 원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OECD 평균의 복지를 시행하려면 예산이 80조 원은 있어야 한다"며 "당연히 재원 마련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부유세(일정액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례적 또는 누진적으로 과세) 도입 신설을 제안한 바 있다.
재원 마련 방안 구체성 결여, 무상시리즈의 한계이렇게 당론이 모이지 않고, 재원마련 방안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이 '무상시리즈'의 큰 한계점이라는 지적이다.
우석균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민주당 안의 전체적인 한계는 누구에게 재정을 부담시킬 것인지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돈 많이 버는 기업과 돈 안 내는 최상위 부유층에게 부담시키겠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우 정책실장은 "노인 의료비가 급속도로 증가할 텐데 이 비용의 50%를 국가가 지원하는 식으로 국고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는 한 실현 의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를 찍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선후관계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재원 마련 방안을 확정하고, 무상의료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정책을 발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재벌과 부동산에서의 탈세가 엄청난데 조세개혁을 치열하게 하고, 소득파악을 제대로 해 세금을 공평하게 걷기만 해도 50조 원은 확보할 수 있다"며 "이러한 재원 마련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두고, 대중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무상 정책을 발표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지금 정반대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선 부소장은 "오세훈 시장이 '복지 시리즈' 운운하며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데, 제대로 된 개혁 방안 제시 없이는 '복지포퓰리즘' 프레임에 당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민주당이 거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모양새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오세훈 편을 들어주는 것이냐"는 비판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당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박선숙 의원은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5년 내에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계획을 내놨는데 좀 더 검토해야 한다"며 "재원에 관한 것은 좀 더 세부적으로 누가 더 돈을 낼 것인가가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는 완전히 민간 영역인데 공공성 확대를 위한 투자가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지 구체성을 좀 더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와의 전쟁, 민주당은 뚫을 의지 있을까무상의료의 경우, 의료계와 보험사 등과의 갈등을 뚫고 갈 의지가 있겠느냐는 물음표도 찍힌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면 국민들은 민간보험을 해지하려 들텐데, 이는 사실상 생명보험사들과의 전쟁을 의미한다"며 "민주당이 여기까지 감내하고 추진해 나갈 의지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의료계와의 갈등도 예고된다. 민주당은 진료비 절감을 위해 행위별로 의사에게 수가를 주던 것을 질병 단위로 수가를 제공하는 '포괄수가제'(입원)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해 지급될 건강보험비용을 확정해 병원이 진료를 조정하게 하는 '총액 예산제'를 중장기적으로 도입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과잉 진료를 막아 결과적으로 의사들의 '수익'이 줄어드는 방안이기에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것이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료 공급자 규제 정책에서 총액계약제 등 적극적 규제 방식은 병원협회의 눈치를 본 부분이 있다"며 "보험재정을 확충한다 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과잉 의료를 막을 수 있는 규제책 도입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익 교수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민주당이 총액 계약제, 포괄 수가제의 실행 시기와 방식을 명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회적 담론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명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시민사회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노력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복지 포퓰리즘? 그럼 박근혜의 복지정책은 뭐냐"김 교수와 우 정책실장은 다양한 비판을 제기했지만,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보수의 비난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포퓰리즘 운운은 말 같지 않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박근혜 의원이 '생애주기별 복지'라는 커다란 복지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방안의 구체성은 민주당의 것보다 훨씬 떨어진다, 포퓰리즘을 누구에게 얘기해야 하느냐"며 "그럼에도 보수언론이 이렇다할 비판을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가계 파탄을 막아주는 수준까지 의료 보장성을 확대를 해주겠다는 것은 국가의 의무에 해당된다"며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우 정책실장도 "민주당의 정책은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다 시행되고 있는 것들을 우리도 부분적으로 시행하자는 정도"라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무상시리즈'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이제야 본격적인 복지논쟁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손학규 대표는 '무상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한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제 우리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 나가는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 내에서도 많은 의원들이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해 생각도 많고 염려도 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채택하고 실천해나가고자 하는 보편적 복지의 계획과 프로그램은 아주 구체적으로,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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