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씨가 공사현장에 도착해 레미콘 뒷편에 있는 슈트(chute 사람들이나 물건들을 미끄러뜨리듯 이동시키는 장치)를 조작하고 있다.
최지용
지난 13일 만난 김씨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50여 명이 일하는 '영산레미콘'이란 작은 규모의 업체에 몸 담고 있다. 대형업체는 아니지만 용인지역에 터를 잡고 20년 이상 운영돼 온 제법 탄탄한 업체다. 이곳에 소속된 레미콘노동자들은 모두 건설노조의 조합원이다. 김씨는 건설노조 경기도지부 영산레미콘분회의 분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노동조합이 있는 김씨의 회사는 전 조합원이 산업재해보험에 가입했다. 2008년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와 함께 레미콘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비록 사측과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절반짜리 산재보험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됐다. 그의 회사는 건설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측과 노조가 별다른 분쟁 없이,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지난 17일에 만난 박씨는 정말 사장님이다. 박씨가 속한 회사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태영중기'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일하는 직원들이 "태영아"하고 그의 이름을 막 부른다. 그도 편하게 말을 섞는다. 박씨까지 20명이 일하는 이 회사는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태영중기' 20명의 레미콘노동자들은 메이저 레미콘 회사인 동양레미콘 경기도 광주지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건설노조 경기도지부 동양레미콘분회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총 56명의 조합원들은 산재도 적용받았고, 근무조건을 놓고 회사와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10월, 노조가 점점 활성화 되자 회사는 탄압을 시작했고, 운송료 단가를 25% 낮추겠다고 일방적인 재계약 통보를 해왔다. 특수고용노동자의 특성상 레미콘노동자들은 매년 회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사측에서 시기가 되기도 전에 갑자기 재계약을 요구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받아드릴 수 없었고, 8개월 동안 생계를 건 싸움이 이어졌다.
일을 전혀 할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동양레미콘 노동자들은 결국 사측의 안을 수용하기로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계약해지였다. 그렇게 함께 고난의 시기를 보냈던 노동자들이 동양레미콘을 나와 자신들만의 회사를 세웠다. '태영중기'는 박씨의 이름을 빌리기는 했지만 20명 모두의 회사였던 것.
대부분의 레미콘노동자들은 두 사람 같지 않다. 둘은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레미콘노동자들의 현실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업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산, 아주, 유진, 동양과 같은 대형 레미콘 회사는 노동조합이 거의 없었다. 계약 관계를 쥐고 있는 회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노동자들이 취재에 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김씨와 박씨, 두 사람이 겪어온 과거와 현장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의 모습에 대한 증언을 통해 그 현실을 바라보기로 했다.
[박씨 이야기] "인간다운 삶 찾아 동양레미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