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자료사진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지갑속에는 평균 4.6매의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그 카드는 소비 생활 전반에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다. 껌 한통도 카드를 통해 구매한다. 전기요금이나 핸드폰 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매월 카드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이미 후불로 지불하는 공과금을 카드로 결제하면서 한 번 더 결제 지연을 시키는 셈이다.
소비의 동선까지도 카드의 포인트와 할인 구성에 맞춰 움직인다. 간단한 식재료조차 가까운 슈퍼에서 구매하게 되면 포인트 적립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 같아 용납되지 않는다. 할인이 가능한 특별한 날은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결제 창에서 두드러지게 반짝이는 선결제 방식을 무의식중에 누르고 결제금을 포인트로 갚기 위해 일정이상의 카드 소비를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갖는다. 이렇게 카드를 사용하면서 공짜의 혜택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카드 한도는 그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달간 벌어들이는 소득의 3배 가량 된다. 한도 전부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때로 한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할부까지 이용하고 나면 월급날 결제금이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월급날은 이미 카드 회사의 몫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어쩌면 월급을 타는 당사자보다 카드사들이 고객의 월급날을 더 반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신용카드가 우리의 소비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월급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고가의 최신 전자제품 앞에서, 평소 탐내던 명품에 눈을 뗄 수 없을 때 신용카드는 우리를 망설이거나 구매여력을 따져보는 구질구질한 불편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울한 월급날 쯤은 이미 오래된 관성으로 여긴다. 어짜피 쓸 때 썼을 뿐이고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에 잠시 우울할 뿐 그 이상의 소비 쾌락을 충족시킨 대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그만이다.
쾌락충동을 좇다, 월급날 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그러나 편리성이 가져다 준 달콤한 소비 쾌락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는다. 심리학에는 새로운 환경 변화, 혹은 새것이 주는 쾌락에 사람이 금세 적응해 버린다는 이론이 있다. 일명 '쾌락적응'현상이다.
이 쾌락적응 현상으로 새것에 대한 황홀함에서 우리는 금세 냉정을 찾는다. 그러나 잠시 느낀 쾌락은 여전히 달콤하다. 다시 그 느낌에 사로잡히고 싶다. 곧바로 또 다시 쏟아지는 새것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쾌락에 대한 충동과 그 쾌락에 금세 적응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광고와 수많은 마케팅 장치들과 결합하면서 끝도 없는 욕구불만에 갇히게 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쾌락충동을 쫓으면서 카드 결제금은 한 달 소득의 상당부분을 카드사에 저당잡히는 일상으로 몰아간다. 결국 편리한 소비가 가져다 주는 잠시의 쾌락을 위해 월급날에 대한 기대심과 노동의 보람을 포기한 셈이다.
의식적으로 우울한 월급날을 잊고 합리화시켜도 마음속 깊은 두려움마저 제거하기는 어렵다. 카드값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자괴감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적성을 고려한 이직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소비의 불편에서 해방된 우리는 카드 결제금의 쳇바퀴에 갇혀버린 채무 노예신세나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부터 신용카드에서 벗어나는 것의 시작이다. 신용카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카드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신용카드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카드사에서 좋아하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속성이다.
카드 할인에 집착하게 됐다면, 과감히 포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