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의 장남 규호씨.
오마이뉴스 구영식
조봉암이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을 때 그의 장남인 규호(62)씨는 11살이었다. 그는 당시 장충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작고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방송인 임성훈씨 등이 그의 동기이고, 박근혜·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그의 3년 후배라고 한다. 지난 25일 강남역 근처 횟집에서 만난 그는 부친의 시신이 집으로 인도되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아버지의 시체를 트럭에서 꺼내는 걸 봤다. 관도 쓰지 않고 그냥 트럭에다 실려 보낸 것이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봉암을 대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버지 시체를 내리면서 통곡했다. 염을 하던 분이 저에게 '규호야, 이제는 아버지 볼 수 없으니까 많이 봐둬라'고 해서 아버지를 봤는데 평온한 모습이었다." 부친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기에는 그의 나이가 아주 어렸다. 그도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부친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그는 울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계셨다가 없어지면서 혼동이 생겼다. '몰락'이 그것이다.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것 때문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경찰이 금호동 집에 새끼줄을 쳐놓았다.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한 것이다. 귀양 온 상황이랄까?" 그의 기억에 따르면, 조봉암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숨겨라,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죽음이 가족과 특히 장남에게 미칠 피해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동석한 여동생 의정(61)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어른들은 우리를 보호한답시고 설명을 안 해줬다. 그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우리 삶의 기초는 다 망가진 후였다. 사실 아버지가 없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이 어디 있겠나? 특히 남자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하늘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충초등학교와 중동중학교를 거쳐 장충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지만 대학 입학은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입대 영장이 나왔는데도 2년간 군대에 가지 못했다.
"입대 영장이 나왔는데 중정(중앙정보부)에서 나를 불렀다. 내 담당자가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2년 동안 입대를 못했다. 그러다 영장 나온 지 3년째에 입대했는데 공수특전단에 착출됐다. 당시 공수특전단장이 전두환이었다. 거기서 1년간 훈련을 받았는데 '신원부적격'으로 광주 상무대로 보내졌다."사실 그는 '부선망독자'(아버지를 일찍 여읜 독자)여서 '입대 면제' 대상에 속했다. 그런데도 30개월 이상의 군생활을 고스란히 마쳐야 했다. 그는 "군에 안 갔다 왔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었을지 모른다"며 "군에 갔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국에 의한 관리는 5공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박정희 때도 내 뒤를 밟고 있었지만 5공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당신 무슨 죄 지었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형사들이 와서 집안을 뒤지면서 '당신 남편 조규호씨 어디 갔느냐?'고 추궁했던 것이다. 아내가 '내일 저녁에 온다'고 얘기했고, 형사들은 다음날 진짜 다시 찾아왔다. 신발을 신고 그냥 들어왔다. 제가 여기서 진짜 사는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제가 이사간 곳마다 찾아왔다." 의정씨는 "80년대에 유학가려고 했는데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며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인 88년에서야 여권이 나왔다"고 말했다.
"모나지 않고 잔잔하게 사는 것이 생존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