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권수첩>겉그림
양철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재판을 받는다.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국가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를 때에는 누가 심판할까? 국가의 권력이 우선일까 개인의 인권이 우선일까? 만약 자기 의견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처벌을 받는다면? 어떤 문구가 적힌 티셔츠나 어떤 색깔의 옷을 입는 것이 불법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지구온난화 혹은 환경오염은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정당한 전쟁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인권을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한국의 인권보호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인권관련기구들은? 학교와 어른들은 왜 끊임없이 인간의 기본 권리인 두발과 복장으로 학생들을 규제하는 걸까?
<청소년 인권수첩>(양철북 펴냄)은 이와 같은 물음들에 답하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인권 교과서'다.
오랜 동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해오며 인권 관련 저서들을 집필해 온 저자들(크리스티네 슐츠 라이스·공현)은 청소년들이 알아야 인권 이야기들을 조근 조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야기는 모두 83꼭지.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려고 하는가 하면,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고 인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이 침해당하고 있다. 정부의 표현의 자유 침해나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의견 표방 등 정부가 싫어할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눈치를 보며 권고를 잘 하지 않는가하면 인권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활동 또한 활발하지 않다. 국가기관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국제인권기구에서도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의 평가 등급을 낮췄다.-'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중에서우리의 인권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이 부분, 참 씁쓸하게 읽혔다.
2006년과 2010년, 노점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재개발지역 철거민들, 시위 현장의 사람들, 껑충껑충 뛰는 등록금에 몸도 마음도 휠대로 휘는 대학생들, 장애인, 거리 청소부 혹은 환경미화원 등을 밀착 취재, 그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의 인권실태를 고발한 르뽀집 <길에서 만난 세상>(우리교육 2006), <보이지 않는 사람들>(우리교육 2009)을 읽고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적이 있다.
두 권 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낸 책들이다. 참 부끄럽게도 이 책들을 읽기 전까지 인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부당하다 싶을 때마다 억울해하고 분노하다 제 풀에 수그러들곤 했던 것 같다. 또한 책속 주인공들과 같은 이웃을 돌아볼 여유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지라 책을 통해 만나는 인권사각지대의 부조리와 비참함은 더욱 쓰라리게 스며들었다.
여하간, 이 책들을 계기로 실체만 알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촛불시위나 2009 용산참사 등 최근 더욱 빈번해진 인권침해 현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들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문제제기해 왔던 바,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하는 현재의 정권이 국가인권위원회만큼은 건들지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구나!' 지레짐작,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러니 더욱 씁쓸하게 읽힐 수밖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기구다.…국가인권위원회의 가장 큰 역할은 권력을 남용해 인권을 침해하는 다른 국가기관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힘센 권력 기관들은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기 쉽다. 이런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그런 것들을 지적하고 바꾸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국가기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윗사람'들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독립성을 가진 기구여야 한다. 쓴소리를 한다고 돈을 줄이거나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국가기관들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힘센 국가기관들의 눈치를 보며, 때로는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 약자들이 억눌리고 차별받을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생색만 내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강자들의 편에 서 있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중에서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국가인권기구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구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마다 존재한다. 1993년 유엔이 총회에서 '국가인권기구의 권한과 독립성의 자세한 기준과 가이드라인' 등을 담고 있는 '파리 원칙'을 채택하고 여러 나라에 기구 설립을 권고했으며, 같은 해 열린 세계인권회의에서 참가국들이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결의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9장.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역사와 현주소를 알려주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란 이 글은 제7장 '한국의 인권'편 마지막 글이다.
제7장에선 이 글 외에 ▲ 국가는 어떻게 개인의 생각을 감시해 왔을까?▲ 정보화의 편리성이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개선되었을까?▲ 2009년, 용산에서는 왜 사람들이 죽어야 했을까? 등, 종종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이슈가 되었던 실례들을 바탕으로 들려준다.
실제로 청소년 보호를 위해 금지하고 있는 것들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청소년들은 왜 밤 10시 이후에 찜질방에 갈 수가 없을까? 밤 9시까지는 괜찮았던 찜질방, 노래방, PC방들이 밤 10시부터 갑자기 '유해'한 장소가 되어 버린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위험해서 그런다고도 하지만, 야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학원이 끝나고 밤늦게 가는 청소년들을 어른들은 오히려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교육 제도에 비판적인 내용을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한 적도 있어서, '청소년 보호'를 핑계로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청소년 보호는 청소년을 위한 것일까?'중에서청소년을 둘이나 둔 부모인지라 한국의 청소년 인권만을 다룬 제8장의 글들은 특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내 생각을 비교해 보거나 부끄러워하고 또한 공감하며, 그 어떤 주제들보다 신중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첫째가 "어떤 곳은 12월 말일까지를 기준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어떤 곳은 고등학교 졸업 혹은 생일을 적용하여 제한하기 때문에 정말 혼동돼요. 왜 같은 지역에서 업소와 업종마다 법이 다를까요? 어른들이 만든 법을 믿고 제대로 지키려면 힘든 것 같아요"라며 '청소년보호법'의 취지와 기준 등을 의아해 했던지라 더욱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이 글 외에도 제8장에선 ▲ 학교에서는 정말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 학교는 왜 그렇게 학생의 머리카락과 복장에 집착할까? ▲ '사랑의 매'는 인권침해일까? ▲ 학교가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있을까? ▲ 청소년도 노동자가 될 수 있을까? ▲ 가정에서의 인권지수는? 등 청소년과 청소년을 둔 부모들이 반드시 알았으면 싶은 청소년 인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인권 문제는 얼핏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기 일쑤다. 또한 특별한 사람들만 생각하고 실천하거나 활동하는, 나와 별 상관없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혹은 뉴스를 통해 만나는 배고픔에 시달리거나 도망 다니는 사람들, 매를 맞는 여성들이나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학대받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등과 같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올 겨울 우리들이 숱한 고통과 대가를 치르며 견뎌내야 하는 혹한이 인권과 관계가 있다면?
환경오염은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구온난화는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청소년 인권수첩>은 선언 60년이 훌쩍 지난 세계인권선언(1948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 인권 운동의 거의 모든 이야기들과 우리의 인권 현주소, 나와 남의 인권을 위해 우리들이 알고 실천해야 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들려준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 인권 수첩>|저자 크리스티네 슐츠 라이스, 공현 지음|안미라 옮김|2010.12,23|양철북|값:10,000
청소년 인권 수첩 - 개인의 자유와 지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인권 교과서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공현 지음, 안미라 옮김,
양철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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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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