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주자면 밥 달라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
며칠 전 타임라인에 무상급식 때문에 영어교육시설을 개선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평소라면 넘어갈 만한 글을 굳이 RT하며 영어교육의 효율성이 평등을 가르치는 것보다 우선된다는 그 사고방식이 더 이상하다며 날선 글을 날렸다. 그리곤 그것도 모자라서 난 내 아이가 학교에서 수준 높은 영어교육보다 밥의 평등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고 쓴 소리마저 해버렸다. 권투로 치면 잽 날리고 어퍼컷까지 보란 듯이 날려준 셈이다. 그리고 잠시 뒤 평등하게 밥을 주자는 걸 보니 너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인가 보다라는 답을 받았다. 잠시 멍해졌다.
밥을 주는 게 왜 사회주의인가? 라는 문제 때문에 멍해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한 사람을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도구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사용되는 것에 멍해졌다. 그러더니 그분 왈 공안당국에서 나 같은 사람을 처리해야 한단다. 그 순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택시기사 아저씨를 떠올렸다. 1월 중순 손님을 마중하기 위해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부산역에 갔다. 역 광장에는 한진중공업의 대량해고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시위 중이었고 덕분에 역 광장이 혼잡해 택시가 매표소까지 가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 때문에 택시기사님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고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저런 빨갱이들은 다 잡아가야 된다는 말을 나지막이 하셨다.
밥이 문제다. 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자고 했다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밥 먹고 살게 해달라고 시위했다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홍대 미화원 아주머니들과 경비원분들은 편하게 밥을 먹게 해달라고 인간다운 밥을 먹게 해달라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밥그릇마저 빼앗기고 졸지에 학생들 공부나 방해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렸다. 대한민국에선 그렇다. 밥이라는 생존의 문제마저 공산주의로 사회주의로 탈바꿈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은 어렵다.
노동운동은 그저 인간선언일 뿐이다
하종강은 말한다. 사실 노동운동이나 파업은 단순한 거라고 인간답게 살기 해달라고 사람들이 모여 항의하는 것뿐이라고 때로는 그것이 밥그릇을 돌려달라는 말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먹고 살만큼 밥을 달라고 하는 것뿐이라고….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공산주의자가 되고 빨갱이가 되어서 하면 안 될 짓으로 탈바꿈하기 일쑤라고 말이다. 덕분에 노동자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아 여전히 노동자는 어렵고 힘든 삶을 산다고 말한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한겨레출판 펴냄)는 그런 노동자의 삶들을 전하고 있다. 저자가 30년간 노동 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정리해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노동조합 위원장도 있고 아무런 직책이 없는 노동자도 있고 또 때로는 노동자의 가족들도 있다. 하나같이 어렵고 가난한 삶, 그러나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글로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글을 읽는 내내 한두 대목에서 나는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무엇이 이 순박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열사로 만드는 건지 아팠다. 그리고 또 무엇이 그들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는 건지도 말이다.
편물노동자 유동우가 최후진술해서 했다는 말은 그 순박한 사람들이 참여했던 노동운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15년 동안 해온 일은'근로기준법대로 하자'는 주장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노동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활동은 단지 인간선언일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지금 인간선언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선언, 얼마나 근대적인 단어인가? 그것을 위해서 많은 노동자들은 투사가 되고 열사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누구는 고공에서 목을 매기도 했고 최근에 누군가는 국내 최고의 기업 회사 기숙사에서 목을 매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도 했다.
그러한 노동운동은 늘 가로막혔다. 때로는 경제개발 때문에 때로는 이념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경쟁력을 길러야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시작해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여전히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우리주변에는 많다. 그래서 하종강은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에는 희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이 들지만 그래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암시가 들어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노동자였던 고 김주현씨의 누나는 동생의 죽음에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장문의 글을 얼마 전 다음 아고라에 게시했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들리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는 하종강의 말을 진실로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기를 빌면서 곱씹어본다.
2011.02.05 16:01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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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하종강 지음,
한겨레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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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살기 어려운 세상, 그래도 희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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