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남소연
지난 1월 30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원호연씨와 '해안선'의 표정은 어두웠다. 최근 다른 3명의 '피고'들과 함께 '촛불 민사재판 피해자모임'을 결성한 이들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대법원 상고와 함께 '원고'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소송 취하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서울시와 법원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원씨의 부인, '해안선'의 여자 친구도 동석했다.
2009년 5월 2일.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호연씨와 '해안선'은 연행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호연(이하 원) : "촛불 1주년 행사가 청계광장에서 열린다는 건 '아고라'를 통해 알고 있었다. 친구들과 (청계광장에) 갔더니 차벽으로 막혀 원천봉쇄 되어있었다. 갈 데가 마땅치 않아 밥을 먹고 나오는데 태평로가 다 뚫려 있더라. 거리 행진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축제도 즐길 겸 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사람들이 서울광장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저도 같이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에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이 피켓을 들고 왔다 갔다 하더라. 그러고는 깃발들이 하나, 둘 올라가 무대를 점거했다. 저도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었나. 경고방송이 나오고 대한문 쪽에서 전경들 수백 명이 무대 쪽으로 뛰어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도망가고. 저도 나왔다. 그러고는 시청역 앞에서 '시민악단' 공연을 보고 있다가 연행됐다. 같이 노래 부르면서 박수치고 있는데 전경들이 둘러싸면서 거기 있던 사람 전원을 연행했다."
'해안선'(이하 해) : "저도 아고라를 보고 나왔다. (원호연씨와) 마찬가지로 거리행진을 따라가다가 전경들이 대한문 쪽에서 막으니까 밀려서 시청광장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대 위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었다. 이후 경찰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단상 위로는 안 올라갔고, 경찰들이 (사람들을) 연행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러다 경찰들이 저를 잡아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저항을 하다가 경찰을 발로 찼고, 폭행죄로 연행되었다."
'1300여 명 시위대'(중앙지법 판결문)가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50여 명의 사람들이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무대를 점거한 것은 오후 8시 5분경. 2009년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일선 지휘관의 무전 녹취록에 따르면, 주 청장은 이날 오후 8시 20분경 "지금 시청행사가 다 엉망이 됐기 때문에 검거 인원이 많아야 한다. 초반부터 검거를 많이 하라고 했는데 오는 족족 검거해서 검거인원이 많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시간 반 만에 시청 앞에서는 64명이 검거되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주 청장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2일 오후 6시 50분경)부터 "초기에 검거를 많이 하는 게 해결책이기 때문에 보는 족족 검거하기 바란다", "(시민들이) 인도에 산재돼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를 해!"라며 '강경진압'을 주문했다. 이날 하루 동안 경찰이 검거한 인원은 무려 178명. 이 때문에 이날 경찰의 연행에 대해 '과잉진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힘 없는 개개인에게 소송 걸어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