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 죽음,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월 50만원 계약서라도 제발 지켜달라"

['최고은 그 후' ②] 한국에서 영화인으로 산다는 것

등록 2011.02.21 15:09수정 2011.02.2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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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이후 영화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년 정도 의상 스태프 일을 하다 그만뒀다는 김정화(가명)씨와 영화감독을 꿈꾸며 4년째 연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정민철(가명)씨를 만나 '한국에서 영화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말]
[의상 스태프 1년] "영화 2편 찍어 번 돈 240만원...집에서 용돈 받았다"

 영화 <아저씨> 촬영현장.
영화 <아저씨> 촬영현장. CJ 엔터테인먼트

14일 서울 송파구의 신천역 부근의 한 패스트푸드점. 김정화(가명)씨는 "영화는 돈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 스태프들이 만날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돈 있는 사람이 돈이 남아돌아서 취미생활로 하는 게 영화다. 드라마 못 봤나. 재벌 2세인데 아트적인 감성과 영화에 대한 로망을 가진! 그래야 영화 하는 거다. 이게 생계가 돼서는 사람 굶어 죽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씨가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지난 2008년 겨울. 영화 일을 따내는 '오야', 그 밑에 '팀장' 그리고 팀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업계'에서 김씨는 바로 위에 있는 '사수'에게 면접을 본 후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편의 영화를 찍었다.

사극이 아닌 이상 보통 한 편의 영화에는 2명 정도의 의상팀이 '투입' 된다. 영화 시작하기 전 한두 달 정도의 준비 기간 동안 의상 콘셉트를 정해서 감독에게 승인을 받고 의상을 준비한다. 직접 사기도 하고 협찬을 받기도 하고 빌리기도 한다.

김씨가 2번째로 맡았던 영화는 주로 지방촬영이라 두 달 정도를 모텔에서 생활했다. 숙박비는 제작사에서 지원해줬지만 자취생이었던 김씨는 그 기간 동안에도 다달이 방세를 내야했다.

"영화 한 편 들어가면 다른 건 아예 못한다. 자기 생활이 없다. 촬영이 끝나도 보충촬영이 또 있다. 언제 할지를 모른다. 편집하다가 눈에 띄면 한 달 있다가 또 하고, 개봉해야 끝이 나는 거다. 그걸 하고 있으면 다른 일을 전혀 못하니까, 그게 제일 불안했다."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전혀 없어...그만둔 것 후회 안 해"

240만원. 김씨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 편의 영화 의상팀 막내로 일하면서 번 돈이다. 첫 번째 영화에서는 선금 50만원, 잔금 50만원을. 두 번째 영화에는 선금 70만원, 잔금 70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그래도 나는 돈이 적으니까 맨 위에 있는 '오야'가 개봉하기 전이라도 먼저 돈을 주지,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영화가 개봉 안 하면 잔금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영화사에서 얼마를 주면 '오야'가 몇 천만 원을 먹고 몇 백만 원은 팀장이 먹고. 맨 밑에 있는 나 같은 애들은 100만 원 정도 받는다. 그러니까 끝나면 바로 세 네 편씩 계속 하는 거다. 그런데 이건 그야말로 용돈 수준이다. 특히 나같이 자취하는 애들은 생활이 안 된다. 영화 하는 동안은 엄마가 준 돈이랑 그 전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모아뒀던 돈으로 살았다. 부모님이 있어서 먹고 살았지."

김씨는 "몇 년 이상 해야 팀장급이 되는데 팀장급도 3~4개월에 3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야근수당도 없고 의료보험도 안 되고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며 "팀장을 보고 있으면 저게 내가 꿈꾸던 미래인가 싶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 시절 내내 '영화 의상'일을 하고 싶었다던 그는 1년 만에 '꿈'을 접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출 스태프 4년] "최고은씨의 죽음, 충격적이지 않았다"

 영화 <방자전> 촬영현장.
영화 <방자전> 촬영현장. CJ 엔터테인먼트

대학을 졸업하고 연출부 스태프로 현장에서 '구르기' 시작한 지 4년. 정민철(가명)씨는 가슴 속에 쌓아둔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지난 15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정씨는 "최고은씨의 죽음을 듣고 말 그대로 '계약서를 쓸 때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심정적인 큰 동요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들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다.

"이미 작년에 굉장히 유명한 장편영화 조감독이 자살을 했다. 그 조감독의 죽음도, 최고은씨의 죽음도 개별 사건을 놓고 보면 특별한 사건일지 몰라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왜 그랬을까'가 이해가 가는 사건이었다."

정씨는 "(최고은씨에 대해)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보자마자 이야기하고, 전화해서 이야기하고, 당연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런데 이야기만 하는 거다"라며 씁쓸해했다.

"영화라는 게 혼자서 할 수 없는 예술이다. 뛰어난, 경력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서 일 하는 건데, 낮은 데 있는 사람으로서는 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너 배우려면 돈 좀 적게 줄 테니까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 '너 배우려면 나 따라다녀야 해'. 한 마디로 '귀속'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을'의 처지에서는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많이 달라는 거 아냐. 50만원 주기로 했으면 그거라도 제때 달라"

지난 4년 간 '을'의 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는 정씨는 "영화 기획단계에서부터 영화가 극장에 걸려서 모든 상영기회가 끝나고 돈이 제작사나 투자사로 들어와서 잔금정산이 다 될 때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제도적인 기준이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계약서는 구두계약과 다름이 없다. 예를 들면 후반 작업 같은 경우, 사운드 작업을 한다. 작업이라는 게 원래는 두 달이면 될 일인데 일이 미뤄질 수도 있고 세달 네 달 미뤄질 수도 있다. 그런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잔금이 안 들어온다. '미안해 개봉하고 수익금 좀 들어오면 그때 줄게'. 이런 게 관행이고 관례다. 이유가 납득이 안 간다.

돈 안 주면서 '다음에도 우리랑 같이 해야 하잖아'? 이건 협박 아닌가. 이거는 전태일 이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제도적인 기준이 마련이 되어야 하고, 그 기준을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을 때 확실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게 법적으로 필요하다."

정씨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어 갔다.

"결국에는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인데, 물론 이걸 다 지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적은 돈으로 큰 돈 벌겠다는 거야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인 거,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부당대우'를 받고 있다는 게, 대접을 잘 받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50만원을 주기로 했으면 주기로 한 돈이라도 제 때 달라는 거다. 어차피 50만원인 줄 알고 일을 한 거니까. 계약서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거다.

'돈을 벌어야 너네한테 돈을 주지', '흥행을 해야 너네한테 돈을 주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는 좀 숨죽이고 있으라는 것. 말이 안 된다."

"영화계에서는 왜 아무런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나" 

정씨는 최고은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의'가 전개되는 방식에도 답답함을 나타냈다.

"최고은씨가 죽은 것과 관련해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이 최고은씨의 죽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많아서 화가 나더라. 김영하 작가와 조영일 평론가가 싸우는 것도 그 전에 두 분이 '작가론' 논쟁을 하다가 최고은씨가 죽었고, 최고은씨의 죽음이 하나의 소재가 됐다. 메이저 문학계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김영하씨와 언더그라운드 평론가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조영일씨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당사자처럼 놓고 생각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니지 않나.

더 웃긴 건, 최고은씨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영화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공감한다. 그런데 정작 영화계에서는 아무런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김영하-조영일 논쟁만 해도 그렇다. 최고은씨가 문학인인가? 영화 일을 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계 내부의 문제를 영화인들이 허심탄회하게 들춰내고 후벼 파는 '대토론회' 같은 게 필요하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영화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정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밤을 새도 좋으니까, 힘들어도 좋으니까 합리적인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하나. 정씨는 언젠가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는 감독이 됐을 때는 '공정한 절차'를 거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자신이 지난해 만든 단편영화 후반작업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
#최고은 #영화 연출 #영화 의상 #영화 스태프 #최고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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