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마다 묵은 눈이 웅크리고 있는데, 무덤가의 새파란 마늘이 싱그럽다. 언제나 그랬다.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그러기에 살았고,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남과 시작과 희망만 있다면, 이별과 끝과 절망만 있는 것과 매 한가지다. 늙은 노시인이 말했듯이,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 와서 꽃이 되듯이, 절망은 희망을 만들고, 이별은 만남을 만들고, 끝은 시작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겨울은 봄을 잉태하듯이 말이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이 잉태한 올 봄은 유난히 아름다울 듯.
지금 안면도의 땅은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부풀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톡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새싹이 비집고 나올 듯이 땅이 부풀었다. 땅 밑에서 봄을 맞이하기 위해 바지런히 준비하는 씨앗들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이름 모를 꽃이 이미 땅을 비집고 나와서 따스한 햇볕을 먹고 있다. 바랭이 풀이 밭을 덮기 전에는 이 넓은 밭은 온전히 저 꽃의 것이다.
차는 시속 80km로 가고, 계절은? 그렇다. 차를 타고 지나는 저들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지만, 무릎 꿇고 땅을 보는 나의 마음은 이미 봄이다. 안면도에 오면 차에서 내려서 걸어라. 갯바위 돌을 하나 들어낼 때 마다 게들이 바스락거리고, 고동이 다닥다닥 달려있으며, 허연 굴들이 바위를 덮고 있다.
저들은 안면도에 왜 왔을까? 라는 의문은 다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가란 의문과 만난다. 시속 80km로 달려봤자 처음 연육교를 건널 때 보았던 그 바다와 그 소나무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또 바다가 있을 뿐인데 말이다. 빨리 달리면 아주 멀리 갈 수 있을 듯하지만, 저들은 아직도 겨울의 풍경 속에 있고, 나는 저들보다 앞서서 봄을 만끽하고 있다.
2011.02.21 11:11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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