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김씨 가족 냉장고6인 가구인 김씨 가족 냉장고는 김치, 마른반찬, 김이 전부이다. 미취학아동이 4명이나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아이들을 잘 먹이지 못 한다.
구태우
민경이(가명, 8)는 냉장고 문을 열고 한숨을 쉬곤 한다. 냉장고로서 나의 사명을 다하려면, 냉장실에 음식이 풍족하게 있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김재민(35)씨네 임대아파트에 온 건 2년 전이다. 정아무개씨가 이사갈 때 나를 폐기처분하는 대신 김씨에게 주었다.
나는 LG전자 창원공장의 냉장고 1라인에서 태어났다. 냉장실은 313리터, 냉동실은 115리터, 총용량은 428리터다. 지금은 800리터 대용량 냉장고들이 나오는 바람에 구식이 되어버렸지만, 초창기에는 LG전자의 인기 상품이었다.
냉장고로서 나의 걱정은 김씨네 집에 이사오면서 시작됐다. 강북구 번2동 임대아파트에 있는 김씨네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뭔지도 몰랐는데, 김씨네 집에서 있으면서 알게 되었다.
김씨는 5년 전에 간질에 걸려 수급자가 되었다. 김씨네 가정은 6인 가구다. 김씨와 그의 부인, 민경(가명, 8), 혜경(가명, 6), 민아(가명, 4), 민수(가명, 1)다. 김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양육비를 포함해 김씨 가정은 150만 원 정도 지원받는다. 통계청의 소득구간별 기준에 따르면 이 집은 월 소득 100만 원 이상 200만원 이하 수입의 차상위 계층에 속한다.
임대료와 관리비, 민경이·혜경이 유치원비, 분유 값, 약값, 김씨가 노숙생활 할 때 사기당해 진 빚을 갚고 나면, 김씨가 식료품비로 쓸 수 있는 돈은 30만 원도 채 안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열리는 날에 무말랭이와 멸치볶음을 사고, 소시지 등을 산다. 작년부터 물가가 올라, 냉장실에 들어오는 음식은 더 줄었다.
냉장실에 있는 음식이라고 해봤자 마늘 장아찌, 김, 김치, 멸치볶음, 나물이 전부다. 나물은 정월대보름에 옆집에서 가져다 주었고, 김치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가져다 주었다. 아이 4명이 있는 가정의 냉장고로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식구들 만큼이나 나도 배가 고프다.
다른 집 냉장고들은 마트에서 대량 구매한 음식들이 넘쳐나 버리는 음식들이 많다고 하는 데, 김씨네 집은 형편이 안 돼 냉장고를 채우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