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없이 살든가, 대형마트 가지 말든가

[냉장고로 본 한국사회 ③] 냉장고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등록 2011.03.05 17:25수정 2011.03.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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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 거주하는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콜린 베번은 그의 아내, 그리고 18개월 딸아이와 함께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노 임팩트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뉴욕에 거주하는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콜린 베번은 그의 아내, 그리고 18개월 딸아이와 함께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노 임팩트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노임팩트맨

"냉장고 문제가 제일 심각해요"

영화 노 임팩트 맨의 한 장면. 얼굴에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미쉘 콜린이 말한다. 

이 영화는 2006년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인 콜린 베번 가족의 '노 임팩트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았다. 그의 가족은 프로젝트를 시행한지 5개월에 접어들며 '전기 사용 안하기'를 실천에 옮긴다. 그래서 그들은 냉장고를 없애지만 냉장고의 필요성만 절실히 깨닫는다.

냉장고는 집안에서 24시간 가동되어 전기를 잡아먹고, 열을 뿜어낸다. 프로젝트에서 냉장고를 없애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18개월인 딸에게 줄 우유 보관을 위해서 그의 가족에게 냉장고는 필요한 가전제품이었다. 콜린씨에게 냉장고는 필요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콜린씨는 나이지리아산 '겹항아리 냉장고'를 들여온다. 영화에서 그는 겹항아리 냉장고에 대해 "나이지리아 발명품인데 두 항아리 사이에 채워진 젖은 모래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항아리의 열을 빼앗아 차가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겹항아리는 효험을 보여주지 못하고, 겹항아리 속에 보관된 우유는 치즈로 변해간다.

 콜린씨는 나이지리아산 겹항아리 냉장고를 들여오지만 결국 우유는 상해버렸다. 결국 겹항아리 냉장고는 아이스박스로 대체된다.
콜린씨는 나이지리아산 겹항아리 냉장고를 들여오지만 결국 우유는 상해버렸다. 결국 겹항아리 냉장고는 아이스박스로 대체된다. 노임팩트맨

결국 겹항아리 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가 등장하고 아랫집에서 얻어온 얼음이 아이스박스에 채워진다. 영화 노 임팩트 맨에서 냉장고 없이 살아가기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요즘 세상에서 냉장고 없이 산다는 것


냉장고 없이 살아가는 콜린 가족의 시도에 대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가능해?'라고 질문을 던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집에서 냉장고를 없앨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해 줄 사람을 만났다. 생활 속 필수품인 냉장고를 없애고 11년 동안 살아온 윤호섭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로에서 만난 윤호섭 교수에게서 "냉장고를 없앤 후 냉장고를 한번 만들어봤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냉장고를 없애고 산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냉장고를 만들어봤다니…. 윤 교수의 말은 이어졌다.


"소금을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봤어요. 고물 냉장고 하나 얻어서 냉장고 벽에다가 방화벽 두르듯이 소금을 채워봤죠. 소금이 수분을 뺏으면서 열을 내리고 또 제독작용도 하거든요. 그런데 온도차이가 얼마 안 나서 실패했죠. 결국 제 전시회에 내놓았어요.(웃음)"

영화 노 임팩트 맨에서 콜린씨가 겹항아리 냉장고를 만들었듯 윤 교수도 소금 냉장고를 만들었고 콜린씨도, 윤교수도 실패했다. 콜린씨의 내용은 영화가 되었고 윤 교수의 내용은 전시회 작품이 되었다.

환경관련 개인전시회를 시작한 11년 전, 윤호섭 교수는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없앴다. 에너지 독립선언의 일환으로 냉장고를 없애기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에어컨이나 TV와는 다르게 계속해서 켜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에게 냉장고는 제거 대상 1호였다.

  국내 최고의 그린 디자이너이자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로 알려진 윤호섭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국내 최고의 그린 디자이너이자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로 알려진 윤호섭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 윤호섭
그는 "냉장고를 없애고 난 후 주변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주로 어떤 반응이었을까 물어보았더니 윤 교수는 "주변에서 모두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히려 그런 주위의 시선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이게 거꾸로 된 거에요. 내가 '왜 그렇게 큰 냉장고를 비싸게 사고 그 안에 음식을 넣어놓고 썩혀?'라고 이상하게 그 사람들을 바라봐야 하는 건데…."

윤 교수가 냉장고를 없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음식쓰레기 때문. 윤 교수는 "음식쓰레기라는 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냉장고라는 것은 음식을 넣어놓고 썩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먹을 만큼만 조리하면 되는데 '남으면 냉장고에 저장할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갖고 더 많은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냉장고를 없앤다는 것은 전기 낭비도 막고 음식물쓰레기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실천에 나선 결과 식비도 또한 줄어들었다고 한다. 보관할 수가 없으니 필요량만 구매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결국 식비도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냉장고가 없어지고 소비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윤 교수는 대형마트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주로 시장이나 동네에 채소나 야채, 생선을 트럭에 싣고 와서 팔 때 구매한다.

"대형마트보다 시장이나 동네에 오는 트럭에서 오히려 더 신선한 식품을 필요한 만큼 살 수 있죠."

윤 교수는 "필요한 양만 조금조금 사는 게 곧 절약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가면 대부분 묶음상품이나 대용량으로 팔아서 조금씩 살 수가 없는데 이렇게 구매하면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버리는 양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없애고 11년을 살아온 경험주의자 윤호섭 교수의 지론이다.

대형마트를 피하면 냉장고가 숨 쉰다.

"임신하고도 운동을 대형마트에서 할 정도로 (마트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재래시장만 가요."

대구 수성구에 사는 김유정(31)씨는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1+1로 샀던 우유는 유통기한을 지나 버릴 수밖에 없었고  대형 마트에서 다량으로 구입했던 다른 음식들도 꺼내 먹기 힘들었다. 김씨는 자신이 과소비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주 이용하던 마트 대신 근처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소비 패턴을 바꾸었다.

"그동안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을 구입하고 냉장고에 무슨 음식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넣어두었는데 이제는 재래시장에서 일주일에 3번에서 4번 정도 장을 봐요."  

 김씨는 달걀에 유통기한을 적어 기한 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플라스틱 통을 이용해 냉장고 내부를 정리했다.
김씨는 달걀에 유통기한을 적어 기한 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플라스틱 통을 이용해 냉장고 내부를 정리했다.김유정

그는 문 앞에 재고량을 체크할 수 있는 표를 만들고 새로 사온 물품들의 영수증을 붙여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김씨의 월 식료품비 지출은 60만원~70만원에서 현재 50만원으로 대략 16%이상 감소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예전보다 1/3이상 줄었다.

이어 김씨는 "묶음 상품을 무조건 사는 것보다는 100g당 가격을 비교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알뜰 노하우를 전했다.

재무 상담사인 박미정(리얼와이즈 컨설팅)씨는 "수입 대비 생활비 지출이 커서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돈 관리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하러 온다. 이들은 마트에서 대량 구매하고 그것을 보관할 수 있는 큰 냉장고를 선호하며 결국 더 많이 사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한 회원인 김미나(가명, 34)씨에게 냉장고 비우기 프로젝트를 권유했고 김씨는 마트에 가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만으로 2개월을 버텼다. 그는 이제 가급적 냉장고를 채우지 않으려고 한다. 필요할 때 마다 그때그때 사먹고 적정 금액만큼 들고 가서 장을 본다.

박씨는 "마트에는 사람들이 구매하게끔 만드는 여러 마케팅 요소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무장 해제된 채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묶음 상품도 결과적으로 더 많은 양을 사고 다 못 먹고 버리는 양이 늘어나지만 사람들은 싸게 구매한 것만 기억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씨는 "최신 냉장고와 같이 거대한 저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형마트 보다 일반 재래시장에서 장보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냉장고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1) 사전계획을 통한 식품구입의 소비문화 정착
1주일 식단을 미리 꼼꼼하게 계획해 필요한 식품만 적정량 구입하는 소비문화가 생활 속에 정착되어야 한다.

(2) 냉장고의 식품 보관 시 라벨링을 통한 선입선출 방식을 도입.
유통기한 초과로 인한 음식물 쓰레기의 배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넣은 것부터 먼저 꺼내 사용하는 선입 선출식 식품사용이 필요하다. '식품명'과 '보관기간 또는 유통기한'이 기재된 라벨을 보관용기에 부착하는 방법이 있다.

(3) 냉장고의 청소 및 정리정돈은 일주일 단위로
일주일 단위로 냉장고의 보관된 식품을 점검하고, 계획성 있는 식품 구입을 위해서도 냉장고의 청소 및 정리정돈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4) 실천정도와 음식물 쓰레기의 감량정도를 확인을 생활화한다.
계획성 있는 식품 소비와 효율적인 냉장고 보관 및 관리가 지속적으로 생활 속의 실천으로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어느 정도 감량되었는지에 대한 확인과 점검(체크리스트 사용 등)을 생활화 해야 한다.
[대한주부클럽연합 제공]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김재우, 박종원, 정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구태우, 김재우, 박종원, 정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냉장고 #노임팩트맨 #대형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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