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겉그림이정구의 〈교회 그림자 읽기〉
다산글방
개신교에서는 성상이나 도상을 보기가 힘들다. 그것이 우상화될 수 있다는 소지 때문이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다양한 성상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이미지와 여러 성인들의 도상일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 신에 대한 경외심과 여러 인종에 대한 포용력을 넓힐 수 있다.
이정구의 〈교회 그림자 읽기〉는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여러 도상들을 읽고 해석해 준다. 아울러 교회와 관련된 여러 아이콘들, 그 중에서도 서양 중심에서 벗어난 동양적 사고방식의 여러 아이콘들도 설명해 주고 있고, 현대판 교회당의 건축문제에 대해서도 예리한 지적을 한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고 그 시대에 맞는 신의 이미지를 그려야 하며, 디지털적 그리스도론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천이삼백 년 전의 비잔틴 '성화상 논쟁' 당시보다 더욱 심각한 논쟁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이단일지언정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신의 이미지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관련된 그 어떤 이미지라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명하지만 인간의 풍요로운 상상력과 상징 조작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34쪽)누구나 그렇듯, 이미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창출된 이미지를 회상하고 해석하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에 처한 삶의 자리를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정구 교수가 교회 내의 여러 성상과 도상, 그리고 아이콘을 읽어내는 노력도 그에 따른 일이다. 이른바 그것은 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현대판 '몬'과 옛 동화 속 등장하는 '도깨비'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예수를 그려내는 성화는 대부분 서양식 남성 위주다. 헌데 이 책은 구에르치노(Guercino)의 〈토마의 의심〉, 카라바조(Caravaggio)의〈최후의 만찬〉,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축복하는 그리스도〉에 담긴 여성 예수를 강조한다. 카라바조는 수염을 그리지 않는 음영기법을 적용하고 있고, 블레이크는 수염은 있지만 갸름한 얼굴선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자넷 매킨지(Janet Mckenzie)의 〈마돈나와 아기〉도 흑인 여성을 '어머니 예수'로 상징화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는 한국 화가가 그린 도상들도 빼놓지 않는다. 특별히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최후의 만찬〉은 토착화된 성화라 할 수 있다. 선비들이 갓을 쓰고 성만찬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만 농민이나 하인들의 그림이 아니기에, 고난 받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칭찬할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김병화의 〈밀짚광배 예수1〉와〈밀대걸레 예수〉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밀짚광배 예수1〉는 흰 수건을 두건처럼 동여맨, 황색의 수염 난 예수는 깔끔한 한국 농부를 연상케 한다. 더욱이 총살형을 앞둔 눈망울에서는 동학 혁명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비춰진다. 〈밀대걸레 예수〉는 얼굴과 머리털이 걸레다. 눈과 코와 입이 없거나 감추어진 광대다. 그야말로 남의 오물을 빨아들임으로서 자신은 더렵혀지고, 남을 순백하게 하는 '허수아비 예수'에 대한 상징이다.
이 책은 교회 건축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들이 고딕양식으로 가득 차 있음을 꼬집는다. 그만큼 세상과 소통하는 면이 적을 수 있다고 한다. 헌데 일본의 훗카이도 토마무에 있는 〈물 위의 교회〉와 오사카 근교에 있는〈빛의 교회〉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한다. 둘 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인데, 자연과 채광을 그대로 살린 살아 있는 교회당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회당건축도 그런 점들을 닮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건축물보다 그 주변의 풍경이다. 일주일에 주일 단 몇 시간이나마 하느님께 작은 소리로 기도드리고 의탁하고 싶은 곳. 현대인이 원하는 교회는 바로 이런 곳, 이런 공간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시멘트 건물에 자동차 소음, 밤이면 공중에 떠 번들거리는 수많은 붉은 네온 십자가들. 우리가 우리의 강산을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만들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느냐마는 지금이라도 도시 교외로 나서려는 교회는 주변의 풍경부터 살펴볼 일이다."(173쪽)
이 책을 덮고 나면 뭐가 그려질까? 내 머리 속에는 이 책이 교회의 성상과 도상이, 우상의 자리매김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것들이 신에 대한 경외감과 다양한 신(神)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여러 인종들에 대한 포용력도 배가시킨다는 느낌이다. 아울러 세상과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고딕양식의 교회당 건축도 제고해야 될 필요성도 갖게 된다. 가히 꼭대기만을 지향하는 교회의 방향감각에 대해 잠시 멈춰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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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 예수' '허수아비 예수'에 주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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