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51번가 힐튼 호텔, 700여 명의 유태인들이 '조용히' 모여들었다. 미국 내 최대 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 회원들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보좌관이 그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요지는 이랬다.
이러한 내용은 곧바로 미 연방의회 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만들어졌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첫 민중시위가 일어난 '분노의 날(1월 25일)'보다 무려 8일이나 앞선 행보다. 미국 정부조차 정보력 부재로 인해 이집트 혁명을 예견치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 사이, 미국 내 유태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바라크의 몰락을 예견하고 대책마련에 나선 것이다.
2주일 뒤인 2월 4일부터 전국의 유태인 지도자들은 편지를 들고 연방의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180명의 의원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이후 민주·공화 양당 대표 한 명씩을 힐러리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방문시켜, 결국 편지의 내용을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관철시켰다.
유태인들의 '로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향후 이집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맺은 평화협정은 계속 지켜져야 한다'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국 내 유태인이 아닌, 180명의 연방의원들이 요청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식되도록 한 셈이다.
김동석(53)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KAVC) 상임이사는 "(이스라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만들어 낸 것은 미국 내에 있는 납세자인 유태인들"이라며 "'지루하게 무슨 한인 정치력 신장 운동을 얘기하느냐'고 그러는데, 그게 아니다. 그들도 '그래스 루트'(Grass Root·풀뿌리, 유권자의 힘) 운동에서부터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한인풀뿌리운동의 대부 격인 김동석 상임이사를 만난 것은 지난달 26일 오전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 카페에서였다. 4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커피 2잔씩도 모자라 점심식사까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사실 인터뷰라는 형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기자가 사전에 준비해간 질문보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훨씬 더 많았다.
2011년 새해 벽두부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부러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우선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발표한 2012회계 연도 예산안 얘기부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신인 때부터 친분을 쌓아온 대표적인 한인 인맥으로 꼽히는 그였지만, 집권 3년차에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예산안의 내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내 소수계의 어떤 사회운동도 미국의 눈으로 볼 때는 진보성을 띨 수밖에 없다. 주류 백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꼭 소수계에게 전가시킨다. 지금 미국은 재정적자로 인한 위기에 처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예산안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코리안어메리칸들이 우려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소수계는 찬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지키기 위해 적자를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의회에서 줄일 수 있는 예산의 70%는 사회복지 예산이다. 그 중에서도 큰 비중이,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미국 시민이든, 아니든) 교육받을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워싱턴(의회) 컨센서스(합의)가 뭔 줄 아나? 미국시민만 미국이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 이민정책도 소수계에 대한 보수백인들의 야박한 정치논리가 아니라 자본논리다."
현재 미국 내 분위기는 앞으로 10년 동안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그 핵심 내용은 그동안 미국이 보호했던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게 김동석 이사의 분석이다.
"너무나 무서운 얘기다. LA, 시카고, 뉴욕 슬램가 등에는 극빈자들이 많다. 남미계, 흑인 등 냉장고도 없는 프로젝트 아파트에 수용된 사람들이 아침에 눈 뜨고 나오면 줄서서 배급을 받아먹는다. 이 숫자가 너무 많아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배가 고프면 거리로 나온다. 그래서 (1992년) LA폭동이 난 것이다. 그동안 극빈자들은 '오! 오바마'하면서 기대하는 게 있었기 때문에 지난 2년을 참았다."
김동석 이사가 이러한 극빈 지역의 배고픔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는 LA폭동의 기억 때문이다. 1992년 4월29일에 발생한 LA폭동으로 당시 LA의 한인사회는 초토화됐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한인들의 생업터전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당시 걸프전으로 국고를 탕진한 미국 정부는 우선 극빈자들의 배고픔을 때워주던 푸드 스탬프(식사배급)를 축소시켰고, 배고픈 대도시의 극빈자들이 순식간에 범죄자로 둔갑했다.
'위안부 결의안'이 일본의 1000만 불 로비 이겨낸 힘은?
김 이사가 한인유권자센타를 설립한 것도 LA폭동이 계기가 됐다. 미국 정치인들이 한인사회를 책임 있게 보호하도록 한인들의 정치력을 결집하고 신장시키는 게 목표였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30년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 올해로 18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유태인들의 'AIPAC'이 그에겐 최고의 교과서였다.
"모든 것은 자본논리다. 어떤 정치인이 무엇을 하든 내 정치적인 기반에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한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서 중동과 외교를 했다면 이스라엘이 아니고 산유국들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큰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은 국내 600만 이상 유태인들의 정치력 때문이다. 반면 200만 이상의 코리안어메리칸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는 글로벌 이슈만 얘기한다. 이 지렛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유권자등록, 투표참여, 그리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한인유권자의 표심을 알리는 활동이 그가 하는 일이다. 투표율이 시작 때에 비해서 3배(약 30%)로 늘었다. 무엇보다 연방의원들까지도 한인유권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힘을 기반으로 3년 전엔 '비자면제 프로그램'과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을 성사시켰다.
"정치인들을 민감하게 작동시키는 것은 (로비스트가 아니라) 바로 시민들의 목소리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어떻게 일본의 1000만 불 로비를 이겼겠나. 시민들이 들고 워싱턴(의회)에 들어가면 로비스트들은 모두 주저앉는다. 2006년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이 전체회의에서는 상정조차 되지 않고 폐기됐다. 당시 하원의장이 친 일본계인 데니스 해스터트였기 때문이었다.
2007년 마이크 혼다 의원이 다시 결의안을 상정했다. 그런데 이번엔 당시 아태소위원회 공화당 간사였던 도널드 만줄로 의원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결의안의 내용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내세우며 결의안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친일계인 밥 미첼과 데니스 해스터트가 그의 정치적 스승이었다. 특히 밥 미첼은 정치권을 은퇴한 뒤 워싱턴에 '호건&핫슨'이라는 로비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이 바로 일본이었다. 하지만 결국 결의안은 통과됐고, 심지어 만줄로 의원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의 해방구' 방문한 후진타오, 한국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새해 예산안이 그에게 '두려움'이었다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은 3박 4일 일정 중 이틀을 워싱턴에서 자고 하루를 시카고에서 잤다. 시카고에 중국센터인 '공자학원'이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스스로 중국을 만든 것이다. 문화와 언어 등 중국의 모든 것을 재현한 곳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그곳에서 '미국 안에 있는 중국에 왔다, 미국의 해방구에 왔다'는 말을 했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워싱턴에 그 현안이 많은데도 자국의 시민이 있는 곳에 간 것이다. 이게 중국의 힘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디 가는 줄 아나? 최고급 호텔에 우리말도 못하고 완전히 미국인들보다 더한, 출세한 2세들만 불러다가 밥 먹으면서 '코리안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한다. 출세한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하지만 후진타오 주석은 '공자학원'으로 가서 우리같이 미국 땅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일반 시민을 만난 것이다."
김동석 이사는 한국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이 "투박하다"고 했다. 반면 중국은 해외에 나간 화교들에게 결코 '모국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잊고,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잘 살 궁리를 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미국 안에 '새로운 중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 이사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은 미국에 있는 200만 이상 한인들은 미국에서의 정치적 역량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처럼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을 위해 예산까지 배정하면서 챙기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늘 재외동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중국 사람들처럼, 그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있으면 거기서 생존해야 한다. 그런 정책이 훨씬 더 전 민족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장단기적으로 좋지 않겠나. 세계는 변화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전통적인 외교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관만 많이 뽑고, 모든 것을 영사관이 처리한다. 반면 문화원 영사들은 자꾸 줄인다. 뒤로 돌아가는 일이다. 국내 정치 전략가들이 흐름에 대해 둔감하고 변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오바마 "한국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경제위기는 미국 내 소수계에게 위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력을 결집하고 신장시킬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미국 내 각 소수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정치적 영향력 확보 경쟁을 벌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동석 이사는 지난 2008년 초 미국 대선 예비선거를 치르던 와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08년 2월 13일 오바마 후보가 포토맥 프라이머리(수도권 경선)에서 힐러리 후보를 막 이기고 난 뒤, 우리가 초청한 적이 있다. 그 때 오바마 후보가 그런 말을 했다. '한국은 미국에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시기는 지났다. 한국은 200만 이상이 미국에 살기 때문에 중요하다.' 미주동포들이 오바마가 이런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 자신의 일처럼 책임 있는 입장과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가 약속이 없었다면 아마도 인터뷰가 더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급히 외투를 챙겨 일어섰다. 도널드 만줄로 의원 초청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반도 긴장 관계를 생각한다면 새로 연방하원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이 된 만줄로 의원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30년 프로젝트'에 인생을 건 그의 행보는 이제 절반을 조금 넘게 달려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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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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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한 2세들만 찾는 MB, 후진타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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