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막(廬幕)은 묘소 또는 궤연(혼백이나 신주를 모셔 두는 곳) 가까이에 지어놓고 상주가 탈상할 때까지 거처하는 곳이다.
이곳에 설치된 여막은 강내면 연정리 한양조씨 문중의 조육형과 부친 조병천(2000년 4월 작고)이 대를 이어 시묘(부모상을 당하여 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생활하며 묘를 보살피는 일)를 하여, 주변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여막과 묘소를 재현하였다.
특히 조병천옹은 지난 1957년 부친이 사망하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년 동안 생식을 하며 시묘생활을 했으며, 선친묘소에 공장이 들어서자 이장한 뒤 또 다시 3년 동안 여막에서 시묘생활을 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효를 백행지본으로 여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였으니, 위 두 사람의 효행은 인륜과 천륜이 사라져가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여막을 보러 문의문화재단지를 가다
위 글은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에 자리 하고 있는 '문의문화재단지' 안 여막 앞에 세운 안내판에 적혀있는 글이다. 3월 1일, 비가 뿌리는 데도 불구하고, 여막을 보기 위해 문의로 향했다. 뒤늦은 점심 한 그릇을 먹고 문의문화재단지 앞에 가니, 비가 부슬거리며 내린다. 우산도 없는데 낭패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문의문화재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요즈음 세상이 하도 험하니 여막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소개하고자 함이다. 날로 피폐해져 가고만 있는 우리사회가 보기에도 답답하여, 이런 소중한 우리의 풍속을 소개하고자 하는 뜻에서다. 점점 효를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여막은 효의 근본이자, 세상의 도리
사실 여막은 사람이 할 도리 중에 가장 어렵다고 한다. 초막을 짓고 3년이란 긴 시간에 부모의 묘 옆에서 시중을 든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하루 세 번 꼭 상식을 올려야 하는 일들은, 그 고통이 어떠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정말로 TV에서 보이는 전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근자에도 3년간 여막을 짓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를 지킨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그분들의 효야말로 하늘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요즘 들어 많은 소식에서 '패륜'이라는 용어를 접한다. 그렇게 변한 것은 우리의 기본 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기에 여막을 찾아가 그 속내를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효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꽁꽁 잠긴 여막. '입장료 돌려주세요.'
여막은 짚으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문의문화재단지 안에 있는 여막은 돌로 담을 쌓고, 그 주변을 짚으로 덮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음식 등을 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듯하다. 그 안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였는지를 일려주고자 하는 것이, 이번 답사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럴 수가! 여막의 문은 큰 자물통으로 잠겨있었다. 여막을 답사한 날이 3월 1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문의문화재단지를 찾았는데, 이런 날 여막 안을 볼 수 없도록 문을 닫아걸다니. 그러면서도 왜 닫았는지에 대한 안내장 하나가 없다. 그저 닫았으니 겉만 보고 가라는 것인지.
문화재단지 안에 조성한 여막이라면, 그 안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여막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 안에서 생활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문틈으로 보니 벽에 사진 등이 걸려있다. 아마도 여막의 생활을 소개한 듯하다. 그러나 정작 속은 볼 수 없고, 겉만 보고 돌아왔으니. 이런 답답한 일이 있나? 문화재를 입장료를 받고 소개를 하려면, 이런 소소한 것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돈만 받고 보여주지 않으려면 무엇 하려고 입장을 시켜. 그냥 저희들끼리 보면 되지" 아이와 함께 관람을 하던 분의 볼멘소리이다.
2011.03.03 10:45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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