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시가문학상 포스터곳곳에 배포된 포스터. 기상천외한 응모 조건과 문구가 본 행사를 흥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이준하
세상은 즐거운 너희들의 것이다! 주류 문단을 공격하라!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호의적인 관심과 호응 속에 작품을 응모하는 사람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저조한 수를 맴돌던 시가지 웹진의 방문자 통계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웹진 부흥에 큰 도움을 준 엽서시와 캠퍼스몬 관계자에게 축복을!) 시가문학상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아무래도 문학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비롯한 SNS의 영향력 덕분에 관심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가문학상에 응모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정말 열심히 대충 썼다", "그간 축적한 잉여력을 뽐내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솔직히 내 소설이 짱인 것 같다" 등의 말을 덧붙였다. 포스터의 엉터리 같은 말들이 의외로 사람들의 창작욕을 자극한 것 같았다.
작품들은 하루도 끊이지 않고 시가문학상 앞으로 송고되어 왔다. 새로운 형식의 문학상을 표방한 만큼 종래의 문학 대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참 많았다. 장르와 형식, 분량을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에 정말 직접 그린 수채화 그림을 보내온 분도 있었고, 공책에 적혀 있던 시와 그림을 스캔하여 보낸 분도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대충 쓴 (것이 틀림없는) 시가 있는가 하면 1년간의 이태원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장편 소설도 있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응모자는 "가난한 문인 초년생"이라 자신을 소개한 한 분이다. 그는 두 편의 시를 보내왔는데, "시집도 한 권 출간했지만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매일 라면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함께 덧붙였다. 마침 고(故) 최고은 작가의 소식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때였던 지라 걱정되는 마음에 응원 편지를 보낼까 싶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대신 나중에 뒤풀이 파티에라도 그 분이 참석한다면 손을 꼭 붙잡아주고 싶다.
상황이 이렇게 커지니 시가문학상을 준비한 우리는 대충 심사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전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서대문 레드 북스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다. 경험도, 자본도 없는 우리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동의하고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제1회 시가문학상으로 만난 사람들의 인연과 열의를 허투루 소멸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시가문학상을 통해 발견한 글쓰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과거서부터 이어진 관행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주류 문단이 갖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신춘문예와 계간지를 통한 등단의 위력은 여전히 건재하여 문인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고시처럼 "허리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죽어라" 글을 쓰게 하는 요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것이 창작의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라면 그나마 바람직하겠건만 실질적으로 작가라 명명된 선택 받은 소수의 권력층을 두텁게 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억제하는 기제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단견이다.
등단을 위한 단편 소설을 "빡세게" 쓰고 있는 오늘날의 문단 풍경을 돌아보자. 대체 등단이 무엇이며, 작가는 어떤 것인가. 그 반열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 쓰는 글은 반쪽짜리 문학으로 취급 받는 작금의 상황이 과연 합당한가. 권력은 필연적으로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여기서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관계에서 비롯된 폭력이 발생한다.
시가문학상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시도하고 싶었던 것은 권력의 해체다. 특정 매체가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 주류 문단 속에서 작가는 획일적인 글쓰기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마련이다. 몇몇이 짜고 치는 판을 뒤엎고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한 문학, 삶 속에 녹아 있는 문학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다채롭고 즐거우며 자발적인 글들이 어떠한 위계질서 없이 은하수처럼 형형히 늘어선 풍경을 그려보자. 그것이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방향일 게다. 이제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요새 한국 문단 구려. 계간지도 재미없어!"
다가올 축제와 무브먼트를 기다리며 긴 논의 끝에 우리는 시가문학상의 심사를 포기했다. 물론 심사위원 몇몇이 응모작들을 읽고 가작들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입선작 한 편을 고르는 것은 보기에 따라 쉽고 편한 방식이다. 또한 권위 있는 문학상부터 작은 백일장까지 택하고 있는 심사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시가문학상마저 그런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것이 누구이든 심사위원의 선택으로 문학의 지표가 결정되는 것도 꺼림칙했고, 입선작에 선정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 사이에 발생할 위계질서는 더욱 싫었다. (교수 추천작에 들지 못한 열등생의 상흔이랄까)
고심한 결과 우리는 심사 역시 문학상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문집을 나눠준 후에 글을 읽고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만나 각자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밝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무리 권위 있는 심사 위원이 결정한들 각자에겐 각자의 맥락과 취향이 있을 텐데, 시가문학상 만큼은 그것을 존중해주고 싶다. 이렇듯 다소 무책임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가문학상 응모자 중에는 참가 소감을 밝힌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 가운데 "쓰는 동안 얽매이지도 않고 너무 즐겁게 쓸 수 있었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어 보내온 한 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글을 쓰고, 글을 즐기며, 글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만나, 소중한 경험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글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어요" 등의 말도 따뜻한 위로처럼 가슴에 닿았다. 하지만 심사를 통해 입선작을 가려내면 시가문학상을 통해 만난 인연도, 무한한 가능성도 그걸로 닫힐 것만 같았다.
상금이란 명목의 돈 몇 푼과 등단이란 알량한 허울도 물론 좋겠지만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서로의 글을 애정 깊이 읽거나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역시 소중하지 않을까? 우리들은 아무런 혜택 없이 진행된 행사에 아무런 기대 없이 참가한 이 "바보"들을 쉬이 포기하지 않을 계획이다. 먼저 문집을 제작함으로써 역사적인 첫 출발을 기록하고, 파티와 출판 기념회를 열어 얼굴을 마주하고 밤새 이야기도 나누면서 우리가 대체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 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맥락을 확인했다시피 시가문학상은 시시하고 사적인 이벤트에서 출발했지만 새로운 문학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을 품은 전국의 청년들이 함께 호흡하는 무브먼트의 멋진 첫 단추로 거듭나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즐거운 미지의 기적과 마주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