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커져만 가는 나라 빚에, 시민들의 삶의 질은 뒷걸음질입니다. 20조원이 넘는 4대강 사업에, 대통령 형님과 영부인 예산까지. 지방 자치단체 역시 이런저런 건설사업으로 빚더미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세금혁명'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12회에 걸쳐 우리 주변 곳곳서 벌어지는 세금낭비 실태와 현장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 <편집자말>
"만약 기업이었다면, 파산하고 관련자들 다 구속됐을 거예요."
지난 7일 오전에 만난 박혜명 화성시의원(민주노동당)의 말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의 재정 위기 상황을 설명하며 "시는 각종 개발로 예산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막대한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며 "그 결과, 화성시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박 시의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인구 50만 명의 화성시는 동탄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과 기업 이전이 가속화되면서 지역경쟁력 종합평가 1위, 3년 연속 인구 증가율 1위, 기업체 증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화려한 외형에 가려진 살림살이는 위기 상황이다. 화성시의 직접 부채인 지방채 발행액은 지난 2007년 이후 현재까지 3배 이상 늘었다. 화성시의 직·간접 부채 규모는 5963억 원으로, 시민 1인당 113만 원의 빚을 진 셈이다. 지난해에는 예산이 부족해 각종 건설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재정 자립도가 서울 5개 자치구와 경기 성남시에 이어 전국 7위(67.1%, 2010년 기준)인 화성시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재정파탄 주민감사청구 대표자인 홍성규 민주노동당 화성시위원장은 "시의회라는 견제장치가 유명무실한 상태에서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를 위한 무리한 개발 탓"이라고 전했다.
'외상공사' 경기장· 파리 날리는 산업·주택단지
공사가 한창인 향남읍 소재 화성종합경기타운은 재정 위기의 상징이다. 지난 2009년 4월 착공한 경기타운은 당초 올해 1월 완공해 내년 도민체육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사업비(도로건설 포함 2869억 원)가 발목을 잡았다. 사업이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완공이 오는 5월로 늦춰졌지만,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에만 예산 462억 원이 부족했다. 올해 역시 필요한 953억 원 중 382억 원만 확보한 상태다. 나머지 571억 원은 내년에나 마련할 수 있다. 올해 필요한 도로건설 예산 168억 원도 부족하다. 박혜명 시의원은 "돈이 부족해 외상으로 공사하고 있다"며 "도민체육대회 개최권도 이미 반납했다"고 전했다.
대규모 경기장 건설은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화성시에 적정한 경기장 규모는 1만5000석. 하지만 화성시는 이 기준의 2배가 넘는 3만5000석의 경기장을 짓고 있다. 국비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향후 매년 수십억 원의 운영비 적자가 예상되지만, 화성시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 추진에 따른 세금 낭비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업비 5900억 원 중 화성도시공사가 65%의 지분을 투자해 추진하고 있는 전곡해양산업단지의 경우, 분양률은 4.5%에 불과하다. 단지 조성이 완료되는 2013년까지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화성시가 화성도시공사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또한 화성도시공사는 지난해 6월 사업비 1571억 원인 조암공동주택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시공사에 공사비의 80%를 지급보증해 주기로 했다. 635가구를 모집하는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청약 당시 단 29가구만 접수했다. 청약률은 4.5%를 기록했다. 미분양에 대한 막대한 손해는 결국 화성시가 감당해야 한다.
지난 2008년 이후 3년간 화성시의 재정투융자 사업추진 금액은 93건 2조4543억 원에 달한다. 대부분 토목·건설사업이다. 같은 기간 예산 총액이 3조2835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금액이다. 박혜명 시의원은 "화성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전했다.
'살림 풍비박산 난다'는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는 화성시
화성시가 각종 개발 사업을 벌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홍성규 위원장은 "2005~2010년 재임한 최영근 시장(한나라당)이 치적을 쌓기 위해 과도한 팽창 예산을 수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화성시 관계자는 "신도시 개발로 인한 인구증가와 기업체 이전의 증가만을 믿고 세입을 무리하게 늘려 잡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화성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동서간 간선도로 지역개발협력금 1500억 원을 받는다는 전제로 1조 101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짰다. 그러나 정작 간선도로 건설에 쓸 돈은 빼고 각종 개발사업을 늘렸다. 또한 인구 50만 명이 넘을 경우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보전금도 세입 예산에 넣었다.
2009년 12월 백남영 당시 시의원(한나라당)이 "돈이 안 들어오면 살림이 풍비박산 난다"고 지적했지만, 화성시는 예산안을 밀어붙였다. 2010년 3월에는 오히려 159억 원을 추가한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 이후 LH가 지역개발협력금 지급을 거부하고 인구 50만 명 돌파도 늦어져, "살림이 풍비박산 난다"는 백 시의원의 말은 현실이 됐다.
종합경기타운을 비롯해 정남면·기배동·화산동 청사 등의 건설 공사가 중단됐다. 2010년 하반기에는 10억 원 가량을 마련하지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못했다. 그래도 예산이 부족해 지방채를 한도액(570억 원)보다 266억 원 더 발행하더니, 급기야 2011년 수입에서 545억 원을 당겨쓰는 일까지 벌어졌다.
재정 위기는 2011년에 더 심화됐다. 화성시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1548억 원 줄어든 9465억 원. 지난해 당겨쓴 돈과 외상 공사 상환 비용까지 합치면, 실질 예산은 지난해보다 3010억 원 줄어든 것이다. 결국 각종 예산이 삭감됐다. 단적으로, 화성시는 올해 유아교육 지원 예산 8억6500만 원을 줄여, 보육교사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시민들 주민감사청구 "원인과 책임 규명돼야"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채인석 시장(민주당)은 재정위기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시장은 지난해 12월 시의회 시정질문 과정에서 "과다 팽창 예산과 기반 조성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예산 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임 시장의 무리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재정 위기와 현 시장의 문제 해결 의지 부족은 재정 위기 전반에 대한 주민감사청구 신청으로 이어졌다. 홍성규 위원장은 "무리한 사업, 세금 낭비 등 재정 파탄을 야기한 원인과 책임이 규명돼야 한다"며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상황인 만큼,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화성시는 재정 위기와 관련 "불요불급한 예산의 삭감과 지방채 발행을 통해 재정위기를 극복했으며, 향후 면밀한 재정분석을 통해 재정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성시는 '재정 관련 오마이뉴스 질문에 대한 시의 공식입장'을 통해 "인구와 기업체 수 증가로 인해 세수는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지방채의 효율적 관리 및 상환이 향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각종 개발 사업과 관련, "인구 증가로 사회복지시설 등에 대한 주민 수요가 급증했고, 재원 마련을 위한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화성시는 또한 '세금 낭비' 지적을 받고 있는 사업에 대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 유지관리비용 적자폭 최소화"(종합경기타운), "경기도에 지분율 조정 건의"(전곡해양산업단지), "도시공사 재정 건전화를 위해 지도 감독 철저"(조암공동주택개발)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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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업이었다면... 모두 구속됐다" 경쟁력1위 도시의 풍비박산,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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