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마지막에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체렌코프의 빛'은 핵정책과 원전의 가공할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후쿠시마의 비극을 대변한다.
필름파트너즈
츠다가 초대한 동경대 물리학과 에노모토 교수가 등장하면서 원전의 진실은 밝혀집니다. 일본정부는 쓰나미가 덮쳤던 록카쇼에 핵폐기물 저장소를 세운 뒤 지난 1998년 프랑스에서 재처리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반입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줄곧 대지진이 와도 원자로가 감지해 가동을 멈추며, 무엇보다 일본의 원전들은 관동대지진보다 3배나 더 강한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게 내진 설계됐다고 자랑해 왔습니다.
에노모토 교수는 "현재 일본의 일반건축물은 200갈(gal, 지진 흔들림의 가속도단위)로 내진 설계됐고, 도카이 지진대 중심에 있는 하마오카 원전은 600갈, 후쿠시마 등 그 밖의 원전은 400갈로 설계됐다"고 말한 뒤 "그러나 관동대지진 당시 진원지는 900갈이었고, 고베대지진의 진원지는 820갈 이상"이라고 지적합니다.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세계 최고의 내진 설계로 원전을 건설했다는 일본정부의 공언은 거짓말이며, 최근 센다이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진 것은 필연적인 결과인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야마카와 겐 감독은 츠다를 빌려 "이런 지진대국에서 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며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예견합니다. 또한 교수가 제시한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지도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범위를 예측하게 합니다.
이윽고 영화는 일본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원자력 정책을 열린 공간에서 논의하기 위해 도쿄에 원전을 세우려 했다는 텐마의 진심을 공개합니다.
시민들이 토론하고 대규모 반대운동을 하고, 원전 반대 투쟁을 왜곡한 언론들이 제정신을 차린다면, 도쿄는 일본의 에너지정책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텐마의 복안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도쿄만 오다이바를 통해 운반하던 트럭이 납치됩니다. 영화는 "플루토늄 트럭 납치사건으로 원전 유치는 더 이상 필요 없지 않느냐"는 츠다의 말에 "사람들은 과거 일은 바로 잊는다. 끝난 일은 관심이 없다"는 텐마의 화답으로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정치생명이 끝나는 한이 있어도 핵폭발을 상징하는 '체렌코프의 빛'이 일본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고대한 텐마의 고육지계는 그러나 종료 자막과 함께 충격적인 '체렌코프의 빛'으로 되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도쿄 원전유치를 매개로, 1973년 오일쇼크 이후 핵으로 이동한 세계에너지 정책의 이면부터 원전의 비밀을 움켜쥔 국가의 비민주성과 폭력성 그리고 대안에너지까지 폭넓게 진단합니다.
사고 처리를 위해 투입된 86만 명 중 5만5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생존자 중 87%가 발병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 강제 피난지역이 체르노빌 북쪽 300km까지였다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이 대재앙으로 전락할 경우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가늠케 합니다.
지난 2005년 한 환경단체는 국내 여성들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체르노빌 인근 벨라루스와 비슷한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벨라루스 등에서 갑상선암이 급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방사능 낙진이 제트기류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는 한국에서 사고가 터졌다면?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후쿠시마 사태 중에 지난 2009년 원전을 수주했던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들른 뒤 자이드 환경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재난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 국민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이런 모습은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깊은 신뢰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앙에 대해 정부 주도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를 쏟아 붓는 가운데 동 단위의 주민 재해자치센터를 기반으로, 시 단위의 네트워크 거버넌스체계를 중심으로, 정부와 NGO 등이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일본 재해구호 볼론티어 네트워크(NVNAD)를 정점으로 국가재난대응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상존하고 있었기에 이번 재앙에도 침착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재'라는 가공할 대재앙에 일본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그럴진대, 만약 이번 사태가 주먹구구식 재난대응으로 일관하는 한국에서 터졌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질문입니다. 이번 일본 원전 사태는 4대강과 구제역 파동 등으로 환경을 파괴하며 불신의 벽을 차곡차곡 쌓는 한편 원전수출을 대가로 상을 수상하며 '경제대통령' 위상 강화에 '올인'하는 이명박 정부에 던지는 자연의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 영화 <도쿄 원발>은 국내 미공개 작품으로 환경재단이 지난 2005년 주최한 제2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동경 핵발전소>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습니다. <도쿄 원발>은 환경재단그린아카이브에서 대여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는 오는 5월 19일부터 25일까지 CGV상암 및 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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