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요리연구가 강가자(좌측)씨의 한국어가 약간 서툴러서 카페 수카라 대표 김수향(우측)씨가 통역을 해줬다. 두사람 모두 재일교포 3세.
오창균
제일교포 3세 강가자(29), 그녀는 13살이 되던 해에 여섯살 위의 큰 언니로부터 자신의 조국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란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큰 언니도 이날 처음으로 학교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자식들 앞에서 부모님은 담담하게 1남3녀에게 그제서야 사실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어릴때 알았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겪은 부모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민단이나 총련과는 관련이 없는 일본학교에 보낸 것도 그런 연유였는지 모른다.
해방 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던 시절에 건축일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머니쪽의 외할아버지도 일본으로 건너가 양복 옷감을 취급하는 일을 하였고, 강씨는 그렇게 해서 제일교포 3세가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척 싫었다. 학교 교육이나 방송에서는 미국, 유럽이 최강의 부자나라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가난하고 무지하다는 인식을 그 당시에는 갖게 했었다." 여전히 자신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고민을 떨칠 수가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때 큰 언니와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러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농업고등학교(식품가공과)를 진학했다. 그러나 정신적 지주로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줬던 큰 언니를 통해서 마크로비오틱을 알게 되어 생명과 환경을 생각한 음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교 졸업 후, 한국을 처음 찾아온 것은 한국말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6개월 과정의 한글어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한국의 전통음식과 사찰음식에 매료되어 배화여대(전통조리과)에 입학까지 하게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중에도 전통음식점과 떡집의 주방에서 음식을 배우기도 했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