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앞에서 대학생 연합 학술동아리'자본주의 연구회'와 교수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자본주의연구회 이적규정 조작음모 분쇄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진보적인 경제연구 학술단체 회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압수수색 한 것은 고물가, 고실업률 등으로 나빠진 국민들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자본주의 연구회' 전 간부 3명을 체포하고, 전·현직 회원 6명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체포된 3명중 최일영, 하인준씨는 23일 오전 석방되었다.
권우성
지난 21일 경찰은 대학생 학술동아리 '자본주의 연구회' 회원 3명을 체포하고 12명 회원 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다. 3명 중 2명은 하루를 대공분실에서 보낸 뒤 풀려났고, 자본주의 연구회 초대 회장인 최 아무개씨는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태라 한다. 체포된 회원을 면회 간 50여 명의 대학생들도 그 자리에서 연행되어 1박2일을 유치장에서 보냈다.
자본주의 연구회 홈페이지를 보면,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대안을 찾아가는 학술 동아리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석학교수들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학자들이 연사로 참여하고, 6천 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한 대안 경제 캠프를 비롯하여 많은 세미나, 토론 등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자본주의 연구회의 정체를 알고 나니, 경찰이 들이민 혐의를 상식 수준에서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황당한 이 사건에 다수의 사람들은 '맑스는 나도 안다', '학생들이 공부하느라 책 좀 본 걸 가지고 뭐 그러냐' 하는 반응을 보인다. 맑스 평전으로 세미나를 하고 자본론을 읽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한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의 본질은 책 몇 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건강 정책을 공부하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건강 정책의 목표는 두말할 나위없이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지금보다 더 건강한 세상'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다. 다른 학자들이 쓴 책을 보고 현실을 이해하는 건 흉내라도 내겠는데, 듣도 보도 못한 '더 건강한 세상'을 상상하고 정책을 고민하는 건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대한민국 보통국민으로 정규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거추장스러운 것이 '왜?'라는 질문이다보니 자연스레 '상상력'은 퇴화되었다. 나 개인이 무능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어쩌면 우리의 상상력은 사회에서 거세당한 게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연구회는 자본주의를 공부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풀기 위하여 대안을 찾는 학술 공간이다. 경찰은 대안을 찾는 그들의 '상상력'에 국가보안법의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MB정부가 휘두르는 국가보안법의 칼끝이 우리 사회 청년들의 상상력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의 본질이다.
사회는 발전하고 역사는 진보할 수밖에 없다. 어제와 다른 내일이 되기 위해서는 어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구상해야 하고 실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어제와다른 변화를 추구하는 상상력은 그 태생 자체가 불온할 수밖에 없다. 굴러다니는 돌을 쪼개서 도구를 만들고, 돌을 녹여 도구를 만들고자 한 발칙한 상상력으로 인류가 발전해 온 것이다.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자' 했을 때 보내야 했는데...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에서 출발하여 막걸리 보안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잡아가두었고 이미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까지도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법이다.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전화하고, 희귀 혈액 수혈자를 RT로 찾는 세상에서 국가보안법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다.
24살 대학생의 집을 압수 수색한 경찰이 돌아가면서 '마땅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혐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잡혀간 3명 중 2명이 풀려났지만, 여전히 한 명이 '대학생들이 공공연히 분실되는 곳'이라는 대공분실에 갇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했을 때,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고 유리벽 안에 꽁꽁 갇혀 있는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꺼내 왔어야 했다. 사상과 학문에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정하고, 또 그 선마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기에 다수 국민과 연구자들이 상상을 자기 검열해야하는 사회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체포된 자본주의 연구회 회원을 당장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스펙을 쌓고 눈을 낮추어 직업을 구하라는 의미없는 말을 되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벽을 문이라고 차고 나가길 권하는 사회가 그야말로 '국격 돋는' 사회 아닐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금기를 넘어서는 발칙한 상상력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작성과 동시에 개인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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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박물관에 보내자" 했을 때 끝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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