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승선교의 기초는 개울에 놓인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하주성
지금은 길이 나 있지만승선교는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선암사를 중건할 때 놓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조 숙종 39년인 1713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싶어 백일기도를 하였단다. 그러나 100일 기도를 마치고도 관음보살을 친견 할 수 없게 되자, 낙담을 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호암대사는 자신을 구해 준 그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뒤늦게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절 입구에 세웠는데, 그 다리가 승선교라고 전해진다. 전설대로라면 벌교 홍교가 영조 5년인 1729년에 선암사의 스님이 세웠다고 하니, 승선교가 16년 먼저 축조가 된 셈이다.
아마도 두 곳의 다리가 비슷한 것을 보아도 같은 시기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다리를 축조하면서 돌을 쓴 방식이나 마무리를 한 수법 등이 승선교가 오래된 방식이고, 홍교보다 웅장한 모습이기에 더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승선교를 건너지 않아도 선암사 경내로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냇가에 걸쳐 놓은 승선교를 건너야 했다고 하니, 지금보다 선암사를 들어가는 입구가 운치가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