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에서 소사재 가는 눈 덮인 내리막길위험천만한 급경사의 내리막을 기듯 내려와 나무에 기대 잠시 쉬고 있다. 3km도 안 되는 거리를 두 시간 반이나 소요된, 그야말로 '사투'였다.
서부원
등산로 주변 나무와 나무를 묶은 나일론 줄 한 가닥을 생명줄 삼아 거북이걸음으로 내려왔지만, 그마저도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사실상 내리막길 중간에서 고립돼버렸다. 발을 헛딛거나 살짝 미끄러지기만 해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이젠은커녕 등산화조차 신지 않은 아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황급히 119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켰지만, 수신감도가 약한 곳이어서인지 어느새 배터리가 다 소모돼 무용지물이었다. 띄엄띄엄 등산객의 발자국은 보였지만, 그 순간 그곳을 지나가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니 허투루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나무마다 새순이 움트던 오르막길과는 달리,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눈에 덮여 초록빛을 전혀 볼 수 없는 한겨울이었다. 날이 제법 풀린 봄날의 대낮이었음에도 전혀 해가 들지 않는 산의 북쪽 사면이었기 때문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자 발만 동동 굴렀고, 아이에게 아빠의 당황하는 기색이 비칠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아빠, 줄이 있는 곳은 두 손으로 줄을 잡고 천천히 내려가면 되고, 없는 곳은 스틱과 등산화를 써서 계단을 내보면 어때? 다른 사람들이 낸 발자국이 있으니 그곳을 긁어내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힘들면 군데군데 나무가 있으니 거기에 기대 잠깐 쉬면 되고."아빠의 긴장감과는 달리 별 것 아니라는 투다. 아이의 말대로 스틱으로 눈을 긁어내고 등산화로 눌러 평평하게 다져가며 계단을 만들었다. 그 아찔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아빠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며 웃어 보이는 아이가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위험한 것보다 외려 신발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축축해지는 게 더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어느덧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비록 더뎠지만 한 발짝씩 디뎌가며 간신히 내려올 수 있었다. 삼봉산에서 소사재까지 채 3km도 안 되는 길을 내려오는데, 무려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평상시 같으면 1시간이면 족할 거리다. 내리막길을 막 벗어나 소사재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완연한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