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는 이성구(좌) 사장과 그의 아내 김복희(우)씨박영미
이 집 인기가 이 정도니 주인장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영업시간이 다 끝난 오후 5시가 되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창 손님을 받던 방은 그의 침실로 바뀌었다. 다락에는 이불이 있단다. 한 눈에 봐도 누추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이제 가정집 하나 정도는 따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단박에 손사레를 쳤다.
"조금 먹고 살만 해졌다고 초심을 잃으면 안 되지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30여년을 이곳, 복성루에서 생활한 주인장에게 이곳은 희망이자 꿈이었다. 다들 못 먹고 못 배우던 시절, 그 역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시작한 일이 중화요리 배달이었다. 몇 년간의 배달 끝에 주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중화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고향으로 다시 내려온 건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그때 결혼을 했고 돈벌이를 위해 지금 가게 바로 앞에서 포장마차를 열었다. 단속이 어찌나 심하던지 파출소, 경찰서를 끌려 다니며 '주인장 이름으로 된 가게 하나 얻는 걸' 평생소원으로 삼았다.
튀김, 야끼만두 한 개에 5원하던 시절, 하루 꼬박 일해 1350원을 모아 지금 가게 바로 위에 위치한 작은 점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때가 1973년도다. 식탁 두 개 놓고 시작해 그곳에서 7년을 장사했다.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인근 주민 사이에서 입소문이 타면서 장사하는 맛이 났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지금의 복성루 자리로 옮기게 된 주인장 내외는 그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가게를 이전하면서 이웃에서 빌린 800만원은 밤낮 없이 일하면서 8개월 만에 갚았다. 그러고 나서야 진짜 가게를 그 생애 처음으로 마련하게 된 것이다. 어찌 그의 땀과 눈물,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이곳을 떠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손님 오는 낙으로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던 주인장 내외. 결국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옛날에는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았는데 그게 무리가 됐는지 팔뚝 인대가 늘어나 이윽고 수술까지 했다. 아내 역시 허리디스크로 몇 년을 고생했다. 더 지속했다간 아예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 그래서 7~8년 전부터 영업시간(현재 오전 10시30분~오후 4시, 일요일 휴무)을 줄이고, 종업원을 고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상시간은 새벽 1시30분. 그래야 하루 장사 준비를 다 할 수 있다며 반죽부터 해물손질, 그릇 소독 등 주인장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낡고 헤진 주방기구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깊이를, 그리고 주인장의 고집스러운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게가 누추하고, 허름한 데도 많이들 오셔서 맛있게 잡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음식만큼은 후하게 주려고 해요. 복성루 가게를 얻었던 첫 마음 그대로 정성스럽고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