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에서 3월 31일 독립만세운동 있었다

박철하 의왕 향토문화연구소장, "독립운동 기념일 지역마다 달리 해야"

등록 2011.04.01 18:26수정 2011.04.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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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19년 3월 31일 의왕 독립만세운동 심포지엄

1919년 3월 31일 의왕 독립만세운동 심포지엄 ⓒ 의왕문화원


의왕시가 1919년 일제의 식민지배에 반대하여 독립을 절규하며 의왕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 기념일인 3.31일 맞아 의왕문화원 강당에서 3.1절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부 차원에서 삼일절 기념식을 갖고 있으나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일부 지역에서는 당시 독립만세운동이 발생했던 당일 또는 탄압 피해일에 맞추어 독자적인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의왕시에는 1919년 3월 31일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주관으로 마련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제1주제로 3.1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김형목), 제2주제는 수원-화성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수원박물관 학예팀장 한동민), 3주제는 의왕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박철하)에 대해 발표했다.

박철하 의왕 향토문화연구소장은 발제를 통해 의왕지역에서는 1919년 3월 31일 밤, 당시 의왕면 주민 2천 명 가운데 800명이 의왕면사무소(현 고천동주민센터)에 모여 고천주재소(현 고천약국 부근)와 지지대 고개까지 오가면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a  1919년 4월 1일 '매일신보' 기사내용

1919년 4월 1일 '매일신보' 기사내용 ⓒ 심포지엄자료


의왕 주민들 1919년 3월 31일 독립만세운동 전개  

"수원군의 의왕면 고천리에서는 삼월 삼십일일 밤에 다수한 군중이 모여 면사무소와 경관주재소에 대하여 폭행을 함으로 수원주둔병대가 출동하여 해산시켰다는데 주모자로 인정할 만한 자 46명을 체포하였다가 그 이튿날 41명만 태형에 처하여 방송하였다더라."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일본군 육군성에서 1920년 12월 30일에 발행한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를 보면 일제 경찰은 군대를 불러 시위대를 해산시켰으며 이날 46명의 주민이 체포되어 즉결 태형을 맞았는데 걷지 못할 정도로 맞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청계동 출신의 이봉근 독립운동가는 3.1운동 당시 배재학당 출신인 친우 성주복,이복길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여 각 리에 배포했으며, 고천주재소와 현 내손동(갈미)에서 태극기를 들고 지휘하다 총에 맞아 오른쪽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특히 만세운동 참가자들은 보통 주민들과 함께 기독교인들과 천도교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하우현성당과 관련하여 천주교인들인지, 1900년대 초부터 존재한 '학현교회'와 관련하여 의왕면에 거주하는 개신교도인지, 아니면 이들을 모두 포함하여 '야소교'로 표현한 것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어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a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던 의왕시 고천동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던 의왕시 고천동 ⓒ 독립기념관자료


3.1절 기념행사 획일화 벗어나 지역별 기념행사 필요하다

박철하 소장은 "의왕시민들은 의왕지역에서 전개된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며 "그동안 의왕시는 이러한 사실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의왕문화원 또한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반성했다.

그는 "독립만세운동 현장인 현재의 고천동주민센터, 고천약국으로 이어지는 만세운동길, 경수대로의 확장으로 없어진 고천경찰관주재소터 등 그 어디에도 1919년 3월 31일 독립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한 아무런 표식도 없다"며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의왕에서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역사현장을 보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정부가 3월 1일을 정해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있지만 이는 정체성 없이 획일화된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의왕시가 조례를 제정하여 3.31일을 의왕 독립만세운동 기념일로 지정하고, 의왕 주민이 반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이날 기념식을 갖도록 하는 등 정체성 확립에 나설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의왕시 남부인 고천지역뿐 아니라 동부지역에서도 학생조직을 바탕으로 인근 4개리에서 매호당 1명씩이 참가하여 백운저수지에 집결하여 고천주재소와 내손리를 돌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의왕 #독립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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